촛대는 무엇입니까?

마지막 업데이트: 2022년 5월 26일 | 0개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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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성경 예언이 이 사건을 취급한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프랑스 혁명은 외관상 자유와 평등을 외치며 일어난 무산 계급의 혁명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무신론 사상을 유포시키고 공산주의를 태동하게 한 기틀을 마련해 소련과 동유럽 그리고 중국의 수십억 인구를 공산주의와 무신론의 틀 속에 가두어서 하나님의 구속 사업에 큰 장애물이 되었던 것이다.
혁명이 일어나기 전 프랑스는 종교 개혁을 거부하고 부패와 타락이 극도에 달했다. 성직자들은 귀족 계급이 되어 온갖 사치와 향락를 누렸으며 일반 백성들은 압제에 눌려 신음하고 하루 먹을 빵을 구하기도 어려웠다.

요한계시록 2, 3장에서의 ‘이방인’이란 옛날 유태 우월주의 선민의식이 말한 ‘혈연적 이방인’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를 거부하고 적대시하는 영적 자세를 지닌 모든 인간을 말한다. 요한계시록 2, 3장은 이 니골라당, 이세벨 무리, 유태회, 발람을 종말시대의 교회에서 제거해야 할 네 가지 암(癌)적 존재로 명확하게 지적했다. 그 무리들이 교회에 침투하여 들어와 성도 행세를 하며, 교회 안에서 괴사증후군을 일으키는 무리들이 되었다.

니골라당ㆍ이세벨ㆍ유태회ㆍ발람의 무리들은 어떤 무리들인가? 그들은 어떻게 교회괴사 증후군을 일으켰는가? 그들은 어떻게 성도들의 영성(신앙양심)을 파괴했는가?

①니골라당의 하나님 말씀(성경)폐기나 왜곡해석을 버려라.

니골라당은 성경을 인간 ‘이성(理性)촛대는 무엇입니까? 의 재판정’에 끌고 나와 피고석에 앉혀놓은 자들이다. (계 2:6)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그들은 성경대로 믿는다 하면서도 자신의 종교 이기주의적 야망이나 타산을 위해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가감 변조하는 일을 서슴치않는 무리들이다. 그들은 자신의 이성이 원래 피조물로서의 한계에 갇혀있어서, 창조주를 판단할 자격도 능력도 없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상상할 수 없는 지적(知的) 오만에 빠져 있는 까닭이다.

②이세벨의 기복주의와 번영주의와 샤머니즘을 버려라.

이세벨은 양심의 기준에서 예수의 아가페 윤리실천을 옆으로 밀쳐놓는다. (계 2:20)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를 실천하려는 사람들을 ‘신 율법주의자’ 또는 '행위구원론자'로 정죄하며, 자신의 죄가 드러나는 것을 오히려 바르게 사는 이들에게 뒤집어 씌운다. 그만큼 이기적 번영(성공주의)과 이익 극대화(물질주의)의 탐욕에 편집(偏執)되어 있는 자들이다. 말하자면 그들은 이 탐욕을 위해 하나님을 ‘거래대상’으로 보는 우상숭배자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세속적 양적 번영을 신앙의 척도로 삼고, 하나님의 초자연적 권능(샤머니즘)’에 탐익되어, 자기최면으로 스스로를 ‘초자연적 권능’이나 ‘번영하는 축복’을 받은 하나님의 사자로 꾸미기까지 한다.

그들은 성령이나 천국이나 성경도 자기들의 이익을 위한 자산가치 중의 하나로 여긴다. 그리고 이 탐욕이 가져오는 샤머니즘적 잡령들을 ‘진리의 영’과 분별하지 못하고 성령으로 받아들인다. 예수께서는 이를 영적 음행이라고 판시(判示)하셨다. 그리고 그들의 영적 음행의 더러운 실체를, 그 영적 음란의 침상(寢牀)을 뒤엎어서라도 드러내겠다 하셨다. 한 마디로 말해 귀신에 사로잡힌 실상은 정신병리적 증상인데, 바로 그 증상을 숨기지 못하고 모조리 드러내신다는 뜻이다. 즉 그런 자들은 반드시 정신병리적 증세를 감추지 못하게 된다.

③유태회의 ‘보수적 경건 지배주의’와 ‘진보적 지성(知性) 엘리트주의’를 거부하라.
유태회(사탄의 회당)는 고의로 그 이성과 양심을 하나님께 대단히 충성하는 것처럼 보이도록 꾸미는 자들이다. (계 3:9) 보라 사탄의 회당 곧 자칭 유대인(유대회)이라 하나 그렇지 아니하고 거짓말 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그들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그 무리들은 완전히 ‘종교적 엘리트주의’에 묶여 있다. 그들은 종교의전과 제도와 기구를 신성화ㆍ성물화(聖物化) 하면서, 자신의 권위의 의상(衣裳)으로 삼아, 자신의 거룩을 가장(假裝)하여 돋보이게 하는 짓을 즐긴다.

이를 위해 교회의 법과 행정제도나 정치를 교묘하게 이용하여, 자신과 자기의 소속집단을 ‘정통ㆍ보수ㆍ주류’로 만들어 교권 장악에 혈안이 된다. 하나님과 성경도 자신의 경건함과 선함을 드러내는 도구요, 자신의 위광(威光)을 실현하는 교권적 권위와 권력 창출의 근거로 인용한다. 심지어 ‘회개의 연극’ 조차 철저하게 하는 자들이다. 그래서 겉보기로는 그들나름의 정직ㆍ성실ㆍ정의ㆍ법준수가 있지만, 그 모두가 자신의 권위와 권력의 정당한 근거로 내세우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자기가 필요로 하는 여러 신학적 주장을 편의대로 뒤섞어, 자신의 신비를 조작한다. 그래서 어디에서든 겸손을 가장한 눈을 내려뜨고, 독사의 눈으로 상대방이 자신을 높여주는지 않는지를 살핀다.

그러나 그들의 실상은 교회와 교계 또는 사회에서 자기 개인이나 소속집단의 소유와 명예와 지배력에 충성하는 자이다. 그것을 마치 하나님께 충성하는 것처럼 자기최면을 걸면서까지 자기 개인이나 소속집단의 위광에 목숨을 건다. 그래서 그들은 늘 남을 재판하는 자리에 서는데, 그 판결기준은 ‘예수 그리스도의 아가페 윤리’가 아니고, ‘내 편이냐, 네 편이냐’가 기준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옳고 그름’을 책임있게 판별하는 일에서는 떠나고, ‘나 또는 내 소속집단’에게 이익이 되는 것은 ‘선’으로 인정하고, 손해가 되는 것은 ‘악’으로 판결하는 ‘사이비 선악윤리 기준’을 내놓는다. 그들은 교권의 자리를 가지고 개인적 집단적 경쟁과 다툼이 처절하다. 이는 자신의 지배이익을 위해서는 목적도 수단도 얼마든지 변개시키는 자세이다. 그들은 명백하게 ‘종교 마키아벨리즘’에 사로잡힌 자들이요, ‘종교괴물’로 변화한 자들이다.

이렇게 되면, 교회나 교단에서 그들의 눈에 보이는 것은 돈과 명예를 위한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안 보인다. 모든 것은 그들간의 이해와 타협과 거래의 대상이 된다. 결국 교단은 교권주의자들 간의 이해관계로 아수라장을 이루게 된다.

그들은 자기들끼리 원수처럼 싸우다가도 자신들에게 진리의 소리를 외치는 자가 생기면, , 그를 ‘공동의 적’으로 몰아서 죽이려고 달려든다. 왜냐하면, 그 진리의 소리를 그대로 두었다가는 자신들의 악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기득권적인 교권(敎權)을 활용하여 이단 논쟁을 일으키며, 진리의 목소리들을 함께 공격을 한다.

옛날 예수께서도 유태인 사회에서 바로 이 과정을 거치며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셨다. 그리고 한국교회의 선진들인 삼일운동 주동자들 역시 그렇게 해서 교회에서 출교(黜敎)당했다. 이 신앙의 선진들의 희생으로 이루어진 대한민국 건국사 역시 삼일운동의 역사처럼 한국교회사에서 지워졌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이들을 ‘사탄의 무리(유태회)’라 단정하셨다.

④발람 교훈을 따르는 ‘악과의 타협주의’와 종교상업주의를 거부하라.

발람은 앞에서 말한 신앙의 암적 요소들을 두루 갖추고, 그것으로 성공하려는 인격(靈性)이다.(계 2:14)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발람은 철저하게 종교상업주의자로서, 촛대는 무엇입니까? 그의 부패한 이성은 니골라당이요, 화인 맞은 양심은 이세벨이요, 그 괴물스러운 의지는 유태회이다. 발람은 사람에 따라 이 가운데 한 두 가지로 그 타락이 출발하지만, 결국 세 가지가 합쳐지게 되고, 종국에는 종교 마키아벨리스트가 되고 만다. 네가지 중에 단 한 가지만 잘못된 채, 회개하지 않아도,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 대상이 된다. 하물며 종교 마키아벨리즘에 젖은 자가 목회자가 된다면, 그 결과가 얼마나 참담하겠는가?촛대는 무엇입니까?

이런 종교상인(발람)이 목회자나 당회원으로 들어선 교회는 부패한 종교그룹이 함께 백화점 코너처럼 각기 구획된 방을 차지한다. 따라서 이런 교회는 여러 신을 섬기는 ‘만신전(萬神殿, Pantheon)’을 꼭 닮아 있다. 거기에 발람은 ‘악세서리’처럼 반드시 ‘올바른 신앙’을 가진 이들을 끼어놓고, 필요에 따라 그 소수세력을 봐주는 척하며 이용하다가 갈아치우기도 한다. 왜냐하면, 이 올바른 이들이 교회의 코어그룹이 되거나 ‘권위집단’으로 자라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그런 교회나 노회(총회)에서는 각 파벌끼리의 종교 이기주의적 충돌이 살벌하다. 그러나 발람의 특징은 그것을 즐긴다는 것이다. 발람은 이 갈등 속에서 적절한 충성경쟁과 계급적 질서와 돈과 각종 특혜와 단호한 치리로 중앙집권적 치외법권 지대를 만들 기회로 활용한다. 거기에 화려한 종교의전(宗敎儀典)을 입혀주어, ‘신비의 성역(聖域)’을 제도화 함으로써, 거래와 타협과 경쟁과 견제와 격려가 적절하게 작용하는 ‘작은 바티칸’과 같은 ‘신성 교회정치 체제’를 만든다.

이로써, 예배와 기도와 성찬과 성경은 이 신성 교회정치 체제 유지를 위한 ‘도구적 가치’로 취급당한다. 작은 교황 같은 개인이나 그룹은 ‘대리 하나님’ 같은 절대적 존재가 된다. 그런 자들에게는 교회의 성도들이나 기능이나 자산(資産)을 모두 자신의 명예와 지배를 위한 소유자산으로 여기게 된다. 거대 재벌교회를 만들어, 그것을 사유화하여, 자식에게 대를 이어 물려주는 행태는 이렇게 해서 이루어진다.

이들의 4대 바이러스의 공통된 특징은 아가페(무조건적 사랑)를 거부하는 의지와 정의에 대한 불감증에 감염된 ‘이기적 탐욕 편집증’ 환자들이라는 점이다. 이들은 돈-명예-권력-정욕에 대한 편집증세에 사로잡힌 비정상적 인격(영성)이다.

계11:2 "그러나 성전 밖에 있는 뜰은 남겨 두고 측량하지 말라. 이는 그것을 이방인들에게 주었으며 그들이 마흔 두 달 동안 그 거룩한 도성을 짓밟을 촛대는 무엇입니까? 것이기 때문이라."

계시록에서 성전 바깥마당을 이방인들에게 내주셨다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교회의 물리적 자산과 인위적 조직이나 기능을 탐하는 ‘발람의 무리들’이 스스로 자기 정체를 폭로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이시다. 그들은 심지어 교회를 사유화하는 데에 이르기도 한다. 그들은 크리스천을 가장(假裝)하고, 교회와 관련된 명예와 권위와 자산과 행정과 교권과 그에 따르는 돈, 그리고 심지어 사람의 영혼까지도 사고판다. 그들은 교회에 속한 모든 것이 이익거래의 품목으로 취급하는 무리들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무저갱에서 올라오는 독벌레 떼는 꼭 나치의 "게슈타포"나 구 소련의 "KGB" 같은 조직의 요원들, 바티칸의 "예수회 신디게이트" 같은 자들만 말하는 것이 아니다. 교회 내의 발람의 무리들이 바로 ‘종교상인 독벌레 떼’ 무리들이다.

요한계시록 2,3장의 말씀은 그런 무리가 파리 떼처럼 달려들어 이익을 탐하는 활동영역, 그것은 반드시 ‘성전 바깥마당’으로 취급당해 버림을 당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행위는 주님의 재림 이전에, 반드시 ‘성전 안 마당’에서는 쫓겨나게 된다. 그러므로 이것은 어디까지나 이 독벌레 떼들로 하여금 스스로의 악을 하나님과 교회 앞에 드러내게 하신다는 경고이다. 그런 자들을 돈과 명예와 교회정치력이 있는 곳으로 모여들게 하신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고, ‘영적 이방인들’에 불과하다. 그래서 그 모여든 곳에서 자중지란과 저주로 심판을 당하게 된다.

그런 독벌레들이 자기 실상을 그들의 악행으로 스스로 드러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렇게 하시는 목적은 그 악한 자들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시고자 함이다. 그러나 그가 이미 교회와 사회에 끼친 사악한 범죄에 대해서는 공적 심문과 징계를 면하지 못한다. 이런 경우는 용서의 은혜도 공적 질서에 맞추어 시행되어야 하는 까닭이다.

오늘날 교회 안에는 이렇게 이방인에 불과한 목회자나 당회원들, 그리고 교회 제직들이 많다. 그런 이들이 신앙의 원리를 더럽히는 발언과 그에 따른 파벌조성과 싸움을 일으켜, 하나님의 성전 안 뜰을 범하기도 한다. 거기에다 성경을 마음대로 인용하여, 자신의 악을 정당화시키는 주장까지 했다면, 그가 세상에서 숨 쉬는 동안 반드시 하나님의 징계가 따를 것이다. 그런 징계조차 없다면, 그것은 더욱 무서운 저주에 버림당한 증좌이다.

각자 스스로 자신의 신앙양심 법정에서 들려오는 주님의 말씀을 잘 가려들어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 안 뜰을 더럽히는 악인 줄 알고 행했다면, 그는 그 자체로써 저주받은 사람이다. 그를 구원할 방법은 없다. 그러나 그런 짓이 정말 옳은 줄 알고 따랐다가 겨우 잘못이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그 순간 즉시 회개하고 그들 틈에서 나와야 한다.

한편 성전 바깥마당을 이방인들에게 내주셨다는 요한계시록 11장 2절의 말씀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신앙양심과 그에 따른 기도와 행동영역은 신성불가침의 영역으로 성별(聖別)하여, 늘 정결케 하시고 보호하신다는 의미도 있다. 모든 교회들은 겸허하게 이 예수 그리스도의 심문 앞에서 자신을 씻어야 한다.

이런 경우엔 ‘교단정치의 책략’이 가장 더러운 독균으로 누구나 느껴지게 될 것이다. 즉시 그런 무리들은 소독해내야 한다. 올바른 신앙 양심의 깃발 즉 바른 신학과 목회양심을 내세워야 한다. 그리고 그 원칙대로 행동하는 주체집단이 일어서야 한다. 그렇게만 되면, 하나님께서 직접 올바른 깃발을 든 쪽에게 권위의 옷을 입혀주실 것이다.

이렇게 말씀대로 살아가는 집단이 생기다 보면, 어떤 경우는 서로의 독(毒)을 경계하여 충돌할 경우도 있다. 그런데 들어 올린 깃발을 보니까, 같은 깃발인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런 경우에는 서슴없이 둘은 그 진정성만 확인하고, 서로를 신뢰하고 합해야 한다. 반드시 ‘먼저 합하고자 하는 쪽’의 깃발 중심으로 통합된 조직이 이루어지기 마련이다. 현재 한국교회의 내부에 이런 혼란이 일어나는 중인데, 이 원칙으로 잘 헤쳐 나가야 한다. 이를 헤쳐 나갈 로드맵이 요한계시록 2장과 3장의 ‘아시아 일곱 교회’를 향한 예수 그리스도의 편지에 정확하게 제시되어 있다.

제11과, 두 증인

유대인들은 다 모아도 인구가 얼마되지 않지만 전 세계적으로 중요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들은 각 분야에서 뛰어나며 노벨상을 휩쓸어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까지 노벨 경제학상의 65%, 물리학상 의 32%, 의학상의 23%, 화학상의 11% 그리고 문학상의 7%는 유대인들에게 수여되었다. 유대인들은 무서운 고난과 박해를 당하면서도 어떻게 이렇게 뛰어난 사람들을 배출하는가 하는 것이 많은 학자들의 연구 과제가 되었다.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유대인들이 그렇게 탁월한 것은 그들의 종교적 가정교육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중 에서도 유대인 자녀들이 어릴 때부터 성경을 읽는 것이 그들을 그렇게 뛰어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유대인 어머니는 아이들의 침대에서 성경을 읽어주며 하루를 마감한다. 그것이 아이들로 하여금 큰 꿈을 갖게 하고 건실한 삶을 살게 하며 언어에도 남다른 능력을 갖게 한다는 것이다. 성경이야말로 우리를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책이며 영감으로 쓰여진 하나님의 말씀이다.

* 제11장을 시작하며… 요한계시록 11장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과 그 백성을 핍박하는 세력들의 정체를 드러내고 있으며 마침내 하나님의 말씀과 성도들이 최후의 승리를 거둘 것을 예언하고 있다.

1. 천사는 요한에게 무엇을 측량하라고 하였는가?

“또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일어나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척량하되”(계 11:1).

천사가 성전을 측량하라고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었다고 하였다. 요단강 계곡에서 자라는 이스라엘의 갈대는 길고 똑바로 크기 때문에 길이를 재는 자로 쓰기에 알맞았다. 천사는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측량하라고 하였다. 600여년 전에 에스겔도 이상 속에서 어떤 사람이 성전의 각 부분을 측량하는 것을 보았다(겔 40:3~43:12). 이 측량은 대속죄일에 있었다. 그리고 세 가지 것을 측량하였는데, 바로 성전(겔 40:3~43:12)과 제단(겔 43:13~17)과 사람들(겔 44:1~48:35)이었다. 요한계시록 11장 1~2절의 장면도 구약 성경에 나오는 에스겔의 이상을 배경으로 한 것이다. 에스겔의 이상은 예루살렘 성전의 재건을 암시하고 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 11장 1~2절이 예루살렘 성전을 자세히 살피라는 말 씀은 물론 아니다. 요한이 계시를 볼 당시에는 예루살렘의 성전 건물은 이미 파괴되어(A.`D. 70) 세상에 없었기 때문이다.

2. 얼마나 오랫동안 이방인들은 거룩한 성을 짓밟을 것인가?

“성전 밖 마당은 척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을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저희가 거룩한 성을 마흔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계 11:2).

요한은 “성전 밖 마당은 척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는 말을 들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성전 밖 마당은 성전의 구조에서 이방인들을 위한 뜰이었다. 이방인들은 여기까지밖에 들어갈 수 없었다. 따라서 이방인들은 심판하지도 말고 혹은 인치지도 말고 그냥 두라는 말씀이 된다.

재림 전 심판은 구원 얻을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한 것이다. 이방인들은 원래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곳의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성전 뜰에 있는 이방인들이다. 즉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아직도 참된 이스라엘은 되지 못하여 이교의 습관을 그대로 몸에 지니고 있는 사람들이다. 바로 그들이 마흔두 달 동안이나 하나님의 거룩한 성, 즉 하나님의 신실한 성도들을 박해할 것이라는 예언이다. 그렇다면 성전 마당에 거하면서 거룩한 성을 마흔두 달 동안이나 짓밟을 존재는 도대체 누구일 것인가?

우선 성경 예언에서 마흔두 달이 어떤 기간인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마흔두 달, 1260일, 한 때 두 때 반 때에 대한 일곱 번의 성경상 기록

1. 다니엘서 7장 25절 :한 때, 두 때, 반 때

2. 다니엘서 12장 7절 :한 때, 두 때, 반 때

3. 요한계시록 11장 2절 :마흔두 달

4. 요한계시록 11장 3절 :일천이백육십 일

5. 요한계시록 12장 6절 :일천이백육십 일

6. 요한계시록 12장 14절 :한 때, 두 때, 반 때

7. 요한계시록 13장 5절 :촛대는 무엇입니까? 마흔두 달

* 한 때는 한 해를 의미 :12달 × 30일 = 360일

* 두 때는 두 해를 의미 :24달 × 30일 = 720일

* 반 때는 반 년을 의미 : 6달 × 30일 = 180일

42달 = 1260일

요한계시록은 마흔두 달과 일천이백 육십 일과 한 때, 두 때, 반 때라는 표현을 모두 다 사용하여 그것이 같은 기간을 말함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 기간은 거룩한 성으로 대표되는 하나님의 백성들과 하나님의 교회가 심각하게 고통을 당하는 기간으로 성경에 자주 나오므로 실제적인 1260일, 즉 삼 년 반의 기간일 리는 없다. 기원 후 2000년의 역사에서 겨우 삼년 반을 가지고 성경이 그렇게 비중있게 다룰 리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기간은 예언적인 기간으로 계산하여야 한다. 성경에서 예언상 하루는 일 년(민 14:34`;`겔 4:6)으로 계산하므로 마흔두 달 즉 일천이백육십 일은 1260년이 된다.

그렇다면 1260년이라는 긴 기간 동안 성도들을 괴롭히며 짓밟은 존재는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우리는 몇 가지를 추측해 볼 수 있다.
첫째로, 이 존재는 한 사람일 리가 없다. 한 사람이 그렇게 긴 기간 동안 성도를 핍박할 수 없기 때문이다. 둘째로, 이 존재는 분명히 역사에 등장하 는 세력이어야 한다. 1260년이란 기간은 긴 기간이기 때문에 숨어서 그 일을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셋째로, 성전 밖 마당에 있으면서 그 일을 하였으니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는 종교적인 세력일 것이고 그렇게 긴 기간동안 핍박을 할 수 있었으니 정치적인 권력도 가진 존재일 것이다. 우리는 어렵지 않게 그 세력을 역사에서 찾아낼 수 있다. 1260년(A.D. 538~1798)동안이나 계속된 중세의 긴 암흑시대 동안 누가 세상의 권력보다 더 강한 힘을 행사하며 성도들을 파문하고 종교 재판에 회부하고 화형대의 이슬로 사라지게 했는가? 그것은 중세 로마 교황권의 부정적인 측면이었다. 요한 바오로2세도 로마 교황권이 과거에 저지른 잘못에 대하여 공식적으로 사죄한 일이 있다. 오죽하면 역사가들이 그 시대를 암흑시대라고 부르겠는가? 1260년동안 성도들을 짓밟을 이 세력의 정체와 성격에 대하여는 요한계시 록 13장에 자세히 다시 언급되기 때문에 13장에서 다시 연구하기로 한다.

3. 두 증인은 무엇이며 그들은 1260년 동안 무엇을 하였는가?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저희가 굵은 베옷을 입고 일천이백육십일을 예언하리라 이는 이 땅의 주 앞에 섰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니”(계 11:3,4).

성도들이 1260년 동안 시달림을 받을 때 굵은 베옷을 입고 예언한 두 증인은 누구일까? 본문은 두 증인이 이 땅에서 주 앞에 서 있는 두 촛대는 무엇입니까? 감람나무와 두 촛대라고 밝혔다. 두 감람나무와 촛대는 구약 성경 스가랴 4장에 나오는 장면이다. 스가랴가 두 감람나무의 뜻을 묻자 천사는“이는 기름 발리운 자 둘이니 온 세상의 주 앞에 모셔 섰는 자”라고 알려준다. 두 증인은 사람들이 아님이 분명하다. 1260년의 긴 기간 동안 예언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두 증인은 과연 무엇일까? 우리가 1260일을 1260년 동안 성도들이 박해를 당한 기간이라고 생각한다면 굵은 베옷을 입고 일천이백육십 일을 예언한 두 증인은 사람일 리가 없다. 왜냐하면 사람이 1260년을 살 수가 없기 때문이다. 굵은 베옷을 입었다는 것은 슬픔과 회개를 나타낸다. 그렇다면 두 증인은 1260년의 박해 기간 동안 성도들의 고난을 슬퍼하며 세상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회개를 호소해 온 어떤 것일 것이다. 두 증인은 주 앞에 서 있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라고 했는데 감람나무와 촛대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둘 다 불을 밝히는 것이다. 감람나무는 불을 밝히는 기름을 대주는 원천이 되고 촛대는 그 기름으로 불을 밝힌다. 그렇다면 두 증인은 1260년의 암흑 기간 동안에 감람나무와 촛대처럼 계속해서 불을 밝히는 기름을 대주는 동시에 또 불을 밝혀 빛을 비추어 온 것을 알 수 있다. 우리에게 어두움을 밝혀주는 등이 되고 빛이 되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시편 119편 105절에 주의 말씀이“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라고 말씀하신 것 처럼 하나님의 말씀인 신구약성경은 어두운 중세의 박해시절 그 어두움을 비추는 등이요 빛이었던 것이다.

두 증인이라고 한 것이 신구약 성경을 잘 상징하고 있다. 시편 기자는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라고 노래했으며 예수께서는“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라”(요 5:39)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두 증인은 어떤 사람들이 아니라 성경 말씀, 즉 구약 성경과 신약 성경이라고 보는 것이 올바른 해석이다. 성도들이 고난을 당하는 중세의 암흑 시대 동안 성경 말씀은 그들과 함께 슬퍼했으며 그들에게 위로가 되고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증인이었으며 어두움을 밝히는 등불이었던 것이다. 이것은 그 다음 절을 보면 더 명확해진다.

4. 두 증인을 해하려 하는 자는 어떻게 되는가? 또 그들에게는 어떤 권세가 있었는가?

“만일 누구든지 저희를 해하고자 한즉 저희 입에서 불이 나서 그 원수를 소멸할지니 누구든지 해하려 하면 반드시 이와 같이 죽임을 당하리라 저희가 권세를 가지고 하늘을 닫아 그 예언을 하는 날 동안 비 오지 못하게 하고 또 권세를 가지고 물을 변하여 피 되게 하고 아무 때든지 원하는 대로 여러 가지 재앙으로 땅을 치리로다”(계 11:5~6).

저희를 “해하고자 한즉 저희 입에서 불이 나서 그 원수를 소멸”한다 는 것과“ 하늘을 닫아 그 예언을 하는 날 동안 비 오지 못하게” 한다는 표현은 엘리야의 기사들을 연상시킨다.

엘리야가 기도한즉 이스라엘에 삼 년 반 동안이나 비가오지 않았으며(약 5:17), 엘리야를 죽이려 하던 군사들은 하늘에서 내려온 불이 그들을 소멸하였다(왕하 1:10). 물이 변하여 피가 되게 한다는 것은 모세가 나일강물이 피가 되게 했던 애굽의 재앙을 생각나게 한다. 실제로 모세와 엘리야는 증인으로서 변화산에서 예수님과 말씀을 나눈 일도 있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모세나 엘리야를 감람나무나 촛대로 부른 일은 없다. 또 그들은 사람이기 때문에 1260년의 긴 기간 동안 증인이 될 수도 없었다. 비가 오지 않거나 물이 피로 변하는 재앙이 임한 것은 그들이 모세나 엘리야 같은“사람”을 거절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전하는“하나님의 말씀”을 거절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두 증인은 어떤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다. 구약의 모든 선지자들과 믿음의 조상들은 구약의 증인에 포함되며 신약의 모든 성도들은 신약의 증인들에 포함된다. 그렇다면 신구약 성경이 해하려 하는 사람들에게 실제로 재앙을 내린 일 이 있었는가? 요한계시록 22장 18절은“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할 것”이라고 하였다. 하나님 여 호와는 그를 거절하는 자들에게는“소멸하는 불이시”(신 4:24)다. 각 시대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해하려 하는 시도는 실패하였고 재앙을 가져왔다. 오늘날 우리도 하

나님의 말씀을 왜곡하거나 불순종하면 재앙을 피할 수 없다. 우리가 편리한 대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무엇이라 말씀하셨는가가 가장 중요한 것이다.

5. 두 증인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가?

“저희가 그 증거를 마칠 때에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저희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저희를 이기고 저희를 죽일 터인즉 저희 시체가 큰 성 길에 있으리니 그 성은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니 곧 저희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니라 백성들과 족속과 방언과 나라 중에서 사람들이 그 시체를 사흘 반 동안을 목도하며 무덤에 장사하지 못하게 하리로다 이 두 선지자가 땅에 거하는 자들을 괴롭게 한 고로 땅에 거하는 자들이 저희의 죽음을 즐거워하고 기뻐하여 서로 예물을 보내리라 하더라”(계 11:7~10).

하나님의 말씀이 1260년의 증거를 마칠때 쯤,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 즉 사단의 세력이 성경을 핍박하여 죽은 것처럼 만들 것이다. 성경이 그렇게 박해를 당한 장소를 큰 성이라 했다. 그것은 거룩한 성 예루살렘과 반대되는 개념이며 바벨론 성이다(계 18:2).
그 당시에 실제적인 바벨론이나 베벨론으로 불리던 로마는 이미 없었으므로 큰 성은 바벨론처럼 하나님을 모독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박해한 나라 나 집단을 의미할 것이다.

이곳은 또한 영적인 소돔 혹은 애굽으로 불리는 곳이었다. 소돔은 타락의 온상을 대표하는 이름이며 애굽은 하나님을 무시하고 부인하는 무신론을 대 표한다. 이런 곳이야말로 예수께서 영적으로 못 박히신 곳이다.

그렇다면 1260년의 박해 시대가 1798년에 끝나니, 그 기간이 끝나갈 무렵에 성경에 나올 만큼 대대적으로, 그리고 공개적으로 성경을 핍박한 세 력이 역사상에 있었는가? 예수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할 만큼 교회와 신앙을 미워하고 박해한 세력과 시대가 있었는가? 분명히 있었다.

1789년에 일어난 프랑스 혁명이 바로 그것이다. 대부분의 주석가들이 이 부분을 역사적으로 혹은 실제의 사실로 해석하기를 주저하지만 상징적으 로만 해석할 경우 사흘 반이라는 구체적인 시간이 문제가 된다.

프랑스 혁명은 불과 몇년 동안 계속된 사건에 불과하지만 세계사적으로 교회사적으로 오랜 세월에 걸쳐 뚜렷한 영향을 남겼다.

그러므로 성경 예언이 이 사건을 취급한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프랑스 혁명은 외관상 자유와 평등을 외치며 일어난 무산 계급의 혁명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무신론 사상을 유포시키고 공산주의를 태동하게 한 기틀을 마련해 소련과 동유럽 그리고 중국의 수십억 인구를 공산주의와 무신론의 틀 속에 가두어서 하나님의 구속 사업에 촛대는 무엇입니까? 큰 장애물이 되었던 것이다.
혁명이 일어나기 전 프랑스는 종교 개혁을 거부하고 부패와 타락이 극도에 달했다. 성직자들은 귀족 계급이 되어 온갖 사치와 향락를 누렸으며 일반 백성들은 압제에 눌려 신음하고 하루 먹을 빵을 구하기도 어려웠다.

1789년 7월 14일 분노한 시민들이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하면서 혁명은 시작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 동안 왕과 교회에 억눌렸던 감정이 한꺼번에 폭발하여 새로운 달력을 만들어 종교적인 제일들을 모두 없애버렸으며 일주일을 10일 제도로 만들어 예배일도 철폐하였다. 분노한 시민들은 교회를 더럽히고 성직자들을 모독하는 것을 기쁨으로 삼았다.

혁명 기간에 약 5,000명의 성직자들이 처형을 당했다.

11월 10일에는 이성의 여신을 상징하는 젊은 여인이 선택되어 노틀담 사원에서 경배를 받았다. 프랑스 혁명 의회는 1793년 11월 26일 성경과 종교 행사 금지령을 공식 결의하였다. 그리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이 저희의 죽음을 즐거워하고 기뻐”하였다는 예언이 슬프게도 성취되었다.

그러나 주일 제도가 철폐되고 성경 읽는 것이 금지되며 하나님 대신 이성의 여신이 받들어지자 프랑스는 최악의 무질서와 혼란에 빠져 들어갔다. 범 죄는 증가하고 국민들의 건강은 땅에 떨어졌고 사회는 공포 분위기에 사로잡혔다. 할 수 없이 프랑스는 삼 년 반 후인 1797년 7월 17일 성경 및 종교행사 금지령을 폐지하였다.

6. 삼일 반이 지난 후 어떤 기적이 일어났는가?

“삼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저희 속에 들어가매 저희 발로 일어서니 구경하는 자들이 크게 두려워하더라 하늘로부터 큰 음성이 있어 이리로 올라오라함을 저희가 듣고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니 저희 원수들도 구경하더라”(계 11:11~12).

프랑스 혁명 정부는 성경을 금지한 후에 급속도로 사회가 혼란에 빠 지자 할 수 없이 삼 년 반 만에 그 조치를 철회하였다. 그리고 죽은 것처럼 보였던 두 증인은 다시 살아나기 시작하였다.

1798년 2월 15일 프랑스 군인들이 로마의 시스티네(Sistine Chapel) 성당에 난입하여 교황을 유배 보내고 교황이 그곳에서 죽자 538년부터 1260년 동안이나 계속되던 교황의 세력은 드디어 약화되고 성경은 생기를 얻은 것처럼 보급되고 읽혀지기 시작하였다.
때마침 제지업과 인쇄술이 발달하여 성경을 비싸지 않게 출판하게 되었고 1804년에 영국성서공회, 1816년에는 미국 성서공회가 촛대는 무엇입니까? 설립되어 성경을 대량으로 보급하기 시작하였다. 수많은 선교사들이 전 세계에 파견되었다. 실로 19세기는 위대한 선교의 시대였다.

성경은 오늘날도 베스트셀러 중의 베스트셀러이다. 신구약 성경은 매년 수백 개의 언어로 출판되며 쪽 복음 성경은 1,00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어 보급되고 있다. 대한성서공회의 발표에 의하면 한국의 성서공회는 우리나라에서 2005년 1년 동안에 170만 권의 성경을 발행하였고 1,678,259부의 성경을 77개 언어로 제작하여 85개국에 보내고 있다. 실로 엄청난 성경의 부활이다.

7. 두 증인을 죽이려했던 곳과 사람들은 어떤 피해를 당했는가?

“그 시에 큰 지진이 나서 성 십분의 일이 무너지고 지진에 죽은 사람이 칠천이라 그 남은 자들이 두려워하여 영광을 하늘의 하나님께 돌리더라”(계 11:13).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이렇게 하나님에게서 직접 생기를 얻어 부활했지만 성경을 박해한 프랑스는 커다란 영적 지진을 경험하였다. 그들은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지주를 잃고 피폐해졌으며 엄청난 무너짐을 경험하였다.

성 십분의 일이란 유럽 열(十) 나라 중의 하나에 해당하는 프랑스를 지칭하는 말일 것이다. 죽은 사람이 칠 천이라는 것은 아마도 혁명 기간 동안 죽임을 당한 사람들의 상징적 수라고 생각된다.

이런 격변을 겪고서야 사람들은 비로소 하나님과 말씀을 찾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하나님 없이 벌어지는 참담한 결과들을 바라보면서 비로소 하나 님을 두려워하고 영광을 돌리기 시작하였다.

8. 세 번째 화, 즉 일곱째 나팔을 불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둘째 화는 지나갔으나 보라 셋째 화가 속히 이르는도다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가로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 하니 하나님 앞에 자기 보좌에 앉은 이십사 장로들이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가로되 감사하옵나니 옛적에도 계셨고 시방도 계신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노릇 하시도다 이방들이 분노하매 주의 진노가 임하여 죽은 자를 심판하시며 종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또 무론대소하고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상 주시며 또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때로소이다 하더라”(계 11:14~18).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자 셋째 화가 시작되 기 전 하늘에서 큰 음성들이 나서 이 세상이 그리스도의 나라가 될 것과 그리스도께서 세세토록 왕 노릇하실 것을 찬송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셋째 화가 이 세상 역사의 끝임을 알게 된다. 그 다음에는 하나님 앞 보좌에 앉은 이십사 장로들의 찬양이 시작된다.

그들은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최고의 존경을 드린다. 하나님은“옛적에도 계셨고 시방도 계신 하나님, 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 노릇 하시는 분”이시다. 늘 함께 나왔던“장차 오실 이”라는 구절이 여기에는 나오지 않는 것을 보아 일곱째 나팔은 분명히 마지막 때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구절은 또한 예수께서 다시 오시는 재림의 때와 마지막 심판의 때에 있을 일 을 요약하여 보여주고 있다. 마지막 때에 일어날 일은 다음과 같다.

먼저 이방들이 분노할 것이다. 복음을 거절하며 살아온 그들은 그들에게 내리는 심판과 재앙이 성도들 때문이라고 생각하여 그들을 핍박하며 죽이려 할 것이다. 전세계적인 분노와 핍박이 성도들에게 쏟아질 것이다.

그 때 드디어 주의 분노가 이 땅에 내릴 것이다. 오래 참으셨던 은혜의 시기는 끝날 것이다. 이 땅에 내릴 주의 분노는 일곱 재앙 가운데 잘 나타나 있다(계15~16장). 그 때는 죽은 자들도 심판을 받을 것이다. 이것은 마지막 심판의 때를 가 리키는 말씀이다. 재림하신 후 천 년의 세월이 지난 다음 그리스도와 성도들은 다시 이 땅에 내려온다(계 21장). 그 때 구원받지 못하고 죽은 자들이 다부활하여 마지막 심판을 받을 것이다(계 20:7~15).

그 때에 그의 종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또 무론대소하고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는 상을 주실 것이다. 이제 아름답게 재창조된 이 땅과 새 예루살렘 성이 그들의 거처가 된다. 하나님께 순종하며 살아온 그들에게는 무궁한 기쁨과 영생이 상으로 주어진다.

그러나 이 때는 또한“땅을 망 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때” 이다. 악인들은 끝까지 회개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저항을 시도하지만 마침내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그들을 소멸하게 된다. 마침내 모든 죄악의 역사는 완전히 끝난다. 우주에는 다시 사랑과 기쁨만이 가득 차게 된다.

9. 하늘 성전의 모습은 어떠하였는가?

“이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며 또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과 지진과 큰 우박이 있더라”(계 11:19).

모든 구원의 역사가 마치는 이 때 다시 한 번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며 언약궤가 보이고 있다. 언약궤 안에는 십계명이 들어 있다.
지금까지 사람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무시하며 살아왔다. 심지어 자칭 그리스도인들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십계명을 등한히 여겼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는 넷째 계명에 주의를 기울이는 사람 은 거의 없었다. 그들은 거룩한 안식일을 일요일로 바꾸고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았다. 하나의 계명을 어기면 모두 범한 것과 같다는 것(약 2:10)을 그들은 애써 외면했다.

그러나 마지막 때에 그 모든 불순종은 심판을 받을 것이다. 은혜의 시기는 끝나고 이 세상에는 심판이 있을 것이다.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과 지진과 큰 우박”은 하나님의 계명을 무시하고 순종하지 않은 이 세상에 임할 엄숙한 재앙과 심판을 상징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언제나 감사하는 것은 성전이나 계명이나 심지어는 심판까지도 그 근본 정신은 사랑이며 우리의 구원을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명상할 문제

오늘 우리의 태도는 우리의 영원한 운명을 결정한다. 하나님이 계신 것이 분명한 것처럼, 이 죄악 세상의 역사가 끝나고 마지막 심판이 있을 것도 확실하다. 성경이 그렇게 말씀하기 때문이다.

성경은 영감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경은 아무리 박해를 당하고 거절을 당해도 언제나 승리한다. 그것은 역사가 증거한다.
그러나 그 성경 말씀을 거절하는 세력이나 개인은 마침내 구원의 길에서 떠나게 된다. 그 운명의 날, 우리가 어느 편에 서 있을 것인지 오늘 결정해야 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다. 우리의 생명은 언제 끝날지 모르며 세상의 마지막도 “생각지 않은 때”(마 24:44)에 청천벽력처럼 우리에게 임할 것이다.

도지-촛대는-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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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증인/감람나무의 의미

요한계시록 11장에 보면 성전 측량과 두 증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1절에 보면 요한은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측량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이 명령이 의미하는 것은 가시적인 예루살렘 성전을 측량하라는 것이 아니라, 비가시적인 교회 즉 믿는 자의 무리를 측량하라는 것이다. 신약성경의 여러 곳에서 성도를 성전으로 설명한 것 같이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의 성전”도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과 같은 의미로 사용된 것이다.

2절에 보면 왜 하나님의 백성들을 측량해야 하는지 목적이 나온다. “성전 바깥 마당은 측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은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그들이 거룩한 성을 마흔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 하나님의 백성을 측량하는 이유는 그 범주에 들지 않는 “바깥” 사람들과 구별하기 위해서이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보호해주시지만,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은 이방인들에 의해 42개월 동안 짓밟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42개월의 기간이 나오는데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정말 문자적으로 42개월이라는 의미인가? 그렇지 않다. 계시록에 나오는 모든 숫자는 상징성이 있다. 42개월은 3년 6개월이고 1260일이고 7년의 절반이다. 7년이 완전수라면 3년 6개월은 무엇인가? 불완전수이다. 사람들이 3년 6개월 동안 고난 가운데 있다는 말은 그 고난이 영원하지 않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심판은 일정기간 제한된 기간 동안만 진행된다는 뜻이다.

3절에 보면 이 제한된 기간에 두 증인이 베옷을 입고 예언한다고 하는데, 왜 두 증인인가? 증인이 둘이라는 말은 무슨 상징성이 있는가? 그들이 증언하는 말이 온전하고 확실하다는 뜻이다. “만일 듣지 않거든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증하게 하라”(마태 18:16). 그러면 왜 그 두 증인이 베옷을 입고 있는가? 그들이 전하는 메시지는 심판과 회개의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또 왜 1260일 즉 일정 기간 동안만 예언하는가? 사람들이 증인들의 증언을 듣고 예수 믿을 기회는 영원한 것이 아니고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다음 살펴볼 것이 11:4절에 나오는 “두 감람나무”라는 표현이다. 두 증인이 두 감람나무라고 하였는데, 이 두 증인/감람나무가 누구인가? 이단은 자기들의 교주가 그 감람나무라고 주장한다. 이단은 성경에 무지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그런 거짓말을 하는데,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은 계시록의 중심 이미지들은 모두 구약성경에서 나왔다는 사실이다. 두 감람나무에 대한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스가랴 4장에 보면 두 감람나무 이야기가 나오는데, 하나님의 성전을 세우는데 지대한 역할을 한 여호수아와 스룹바벨을 의미하는 표현이다. 그런데 계시록에서 어떤 이미지를 사용할 때 해당 이미지만을 사용하지 그 이미지가 배경으로 하는 “역사적” 의미까지 모두 사용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계시록의 두 감람나무는 여호수아와 스룹바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그들이 표방하는 가치, 즉 하나님의 성전을 세우고 하나님의 말씀을 증언하는 선지자적 사명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 시각으로 6절을 보면 여기서 말하는 사람이 모세(율법)와 엘리야(선지자)란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이 권능을 가지고 하늘을 닫아 그 예언을 하는 날 동안 비가 오지 못하게 하고 또 권능을 가지고 물을 피로 변하게 하고 아무 때든지 원하는 대로 여러 가지 재앙으로 땅을 치리로다.” 하늘을 닫아 비가 오지 못하게 한 사람은 엘리야이다. 물을 피로 변하고 여러 가지 재앙으로 땅을 친 사람은 모세이다. 그러나 이 경우 역시 역사적 모세와 엘리야라는 의미는 아니다. 그들이 표방하는 가치,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사명을 의미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이 두 사람을 각각 이스라엘 백성과 이방인들을 상징하는 것으로, 다른 사람은 베드로와 바울, 혹은 야고보와 요한을 의미한다고 이해하기도 한다. 정확히 어떤 것이 맞는지 모른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이 두 증인/감람나무가 개인이라기보다는 교회의 예언자 역할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두 증인이 두 촛대라고 하는데, 계시록에서 촛대는 교회를 상징하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이어지는 내용을 잘 생각해보면 두 증인/감람나무에 대한 이야기가 교회/성도의 순교와 부활에 대한 이야기란 것을 알게 된다. 그들이 나중에 어떻게 되는가? 무저갱에서 올라오는 짐승에게 살해당하고 사흘 반 동안 무덤에 장사되지 못하고 거리에 버려진다. 그러나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들어가서 다시 살아난다. 결국, 하나님의 교회는 순교당해도 다시 살아난다는 승리의 메시지가 아니겠는가? 교회는 “사흘 반” 동안(삼년 반과 같은 의미) 즉 일정 기간 동안 박해의 상황에 처하고, 더 나아가 순교 당하기까지 하지만, 결국에는 부활하여 승리자가 된다는 희망의 메시지인 것이다.

촛대는 무엇입니까?

날짜 : 2017년 9월 24일
제목 : 빛은 주님께로 가득히. - 1부
설교자 : 김용덕 목사
본문 : 요한계시록 1장 9-20절
첨부파일 : 1080_com.mp3

여러분이 말씀을 암송하셨으면 여러분 영혼에게 들려주십시오 . 그렇게 내 영혼을 북돋아주고 내 영혼 속에 주의 말씀이 교통하고 성령이 교통하게 하면 그대로 흘러갑니다 . 말씀 선포 , 말씀 암송도 “ 쉐마 이스라엘아 ” 해서 원래 율법이라고 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듣도록 하는 것이 촛대는 무엇입니까? 원리입니다 . 그것을 보고 배우는 것이 아닙니다 . 그래서 율법도 받을 당시에는 말씀의 영입니다 . 의지적인 신앙의 행위는 저를 아프게 합니다 .

하나님의 사람들의 끝을 보십시오 . 모세 , 여호수아 , 사무엘 , 다윗의 끝을 보면 , 그들의 끝은 결코 쇠하지 않습니다 . 모세를 보면 , 비스가 산에서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끌어안고 거기서 생을 마감하지만 그는 영적인 힘을 잃지 않고 있습니다 .

다니엘은 바벨론 1 차 포로로 먼저 잡혀갔습니다 . 그로부터 그가 총리를 마치는 날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돌아온 날과 같습니다 . 칠십년입니다 . 나라가 바뀌고 큰 제국의 황제가 바뀌어도 다니엘은 총리로 있습니다 .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영입니다 . 그의 지혜를 따라 올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 그런데 그 지혜가 자기의 지혜가 아니라 , 즉 배워서 , 학문을 연구해서 나온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오는 것입니다 . 죽을 위기가 찾아와도 그는 하나님을 향한 경배를 그치지 않았습니다 . 그의 신앙이 시들지 않았고 사그라들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은 계속해서 그에게 물 붓듯이 부어진 것이고 그 빛 되신 주님은 계속해서 이 다니엘 가운데 빛을 주셨습니다 .

우리는 성경을 두고도 매우 의지적으로 접근하지 다니엘 안에 있는 그 하나님을 향한 매우 자연스러운 그 경외함 , 정말 주님을 사랑하는 그 마음의 사랑 , 정말 그 순전한 사랑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 같습니다 . 정말 주님 한 분을 경외하면서 정말 주님 사랑하며 가면 되는데 왜 이렇게 많은 방법 , 훈련을 만들어놓고 점검하고 체크하는지 .. 그것을 도구로 쓰지 마시라는 것입니다 .

요한계시록 1 장에 빛과 관계된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 ‘ 일곱 금 촛대 ’, ‘ 금띠 ’, ‘ 흰 양털 같고 ’, ‘ 불꽃 같고 ’, ‘ 빛난 주석 같고 ’, 불로 모든 불순물을 빼낸 , 잘 제련한 빛난 주석 같다는 것입니다 . 그리고 16 절에 ‘ 일곱 별 ’, 그리고 가장 아름다운 , 절정인 “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 ” 자 , 그런데 이 정체를 밝혀드리겠습니다 . 22 장 5 절 “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 그러니까 일곱 촛대의 등불은 상징인 것입니다 . 등불도 쓸데가 없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일곱 등대의 등불도 상징 , 뭘 말하고 있는 것이구나를 알 수 있습니다 . “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 ” 계 1:16 “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 ” 그러니까 예수를 지금 누가 빛 비쳐주고 계십니까 ? 하나님이 친히 비쳐주고 계십니다 . 할렐루야 !

우리는 신앙의 방법을 찾아서 방법을 만들어서 자꾸 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 방법으로 하다가 못하고 , 훈련을 하다가 훈련을 못하고 포기하고 , 자꾸자꾸 주님과 우리 사이를 너무나 많은 것들이 가로막고 있습니다 . 숨 한 모금만 남을지라도 우리는 주 예수를 부를 수 있습니다 . 몸에 힘이 없으면 간절함으로라도 할 수 있는 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의 신앙입니다 . 그런데 너무나 많은 것들을 다르게 대체를 해놨습니다 .

지금 계시록에서 일곱 금 촛대가 나타난 이유는 무엇입니까 ? 일곱 금 등대 , 일곱 금 촛대는 주의 영을 가리키고 있는 것입니다 . 사도 요한은 여기가 밧모가 아니라 또 성전 촛대는 무엇입니까? 마당이 아니라 지금 성전 안쪽 성막에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 “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 .” 그런데 해가 아니라 하나님이 친히 빛을 비쳐주시는 것입니다 . 빛 되신 주님이 아들의 영을 비추시는 것입니다 .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 아들 예수를 비쳐주시는 것을 보면 하나님 아버지에게 아들은 사랑입니다 . 그런 것처럼 옆에 있던 사도 요한도 하나님에게는 사랑인 것입니다 . 그래서 우리 속에 있는 영이 하나님의 촛대는 무엇입니까? 영을 받으면 영 자체가 본질이 하나님의 사랑이기 때문에 내 영이 사랑으로 , 사랑으로 자라는 것입니다 . 내 영이 사랑으로 커가기 때문에 도덕적이고 율법적인 사랑의 행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사는 것입니다 . 그래서 빛 되신 주님이 우리 속에 들어와 계시는 것입니다 . 그 빛을 우리가 받으며 생명수를 마시며 이 땅을 살아가면 진실로 , 진실로 우리들의 영혼은 정말 아름다운 영혼이 될 수 있습니다 . 할렐루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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