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 상인에 대한 결론

마지막 업데이트: 2022년 3월 21일 | 0개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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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양강도 혜산시의 장마당에 마스크를 쓴 이들이 분주하게 오가고 있다.

연구과제 상세정보

본 연구는 기본적으로 중국의 휘주 상인(徽州商人=徽商)에 관한 연구의 일환으로, 특히 그동안 성장의 화려한 모습에 비하여 간과되어 온 쇠락의 요인 및 양상을 분석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휘주 상인은 산서 상인(山西商人=晋商)과 함께 명․청 시대(1368∼1911) 중 .

본 연구는 기본적으로 중국의 휘주 상인(徽州商人=徽商)에 관한 연구의 일환으로, 외환 상인에 대한 결론 특히 그동안 성장의 화려한 모습에 비하여 간과되어 온 쇠락의 요인 및 양상을 분석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휘주 상인은 산서 상인(山西商人=晋商)과 함께 명․청 시대(1368∼1911) 중국 경제를 주도했던 양대 상방(商幇)으로 손꼽힌다. 특히 휘주 상인은 단 1개 부(府)를 지역적 단위로 삼으면서도 1개 성(省)을 단위로 하는 산서 상인, 복건 상인, 강서 상인 등 여타 상방보다도 두드러지고 인상적인 발전을 보였다. 또한 휘주 상인은 당시 경제발전의 최선진 지역인 강남(江南) 지역, 행정적으로 강소성(江蘇省)과 절강성(浙江省)을 중심으로 거의 전국 각지를 그 활동무대로 삼았다. 따라서 휘주 상인의 성장 요인에 대해서는 기존에도 많은 연구자들이 관심을 가져 왔으며, 크게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설명으로 요약이 가능하다.
첫째는 유교적 문화지식의 우수성이다. 둘째는 관부(官府)와의 관계로, 휘상은 다른 어느 상방보다도 관부와의 관계가 밀접했으며 관부의 필요를 채워주는 능력이 우수했다는 것이다. 셋째로, 휘상은 종족 관념이 강하여 종족 조직을 이용한 상호부조의 조직망으로 각 지역에서 상권(商權)을 쉽게 장악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설명 방식은 대부분 각 지역에 진출한 휘주 상인의 다양한 사례를 종합하면서 그 공통적인 성장 요인을 추출한 것으로, 휘주 상인의 다양한 발전양상을 포괄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휘주 상인의 화려한 성장 외환 상인에 대한 결론 과정 및 활동상에 대한 연구가 일일이 열거하기 곤란할 정도로 수적인 축적이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휘주 상인에 대한 궁금증이 모두 해소된 것은 결코 아니다. 특히 미시적인 입장에서 이루어진 성장사(成長史)에 관한 연구가 늘어날수록, “그렇게 인상적으로 성장해갔던 휘주 상인이 왜 그리 쉽게 몰락하고 말았던가”라는, 쇠락의 국면에 대해서는 아직 공백이 많다. 무엇보다 휘주 상인의 성장 요인이 19세기 그들의 쇠퇴 요인과 정합적으로 연결되지 않았다.

최근 대운하의 사회경제적 기능에 주목한 연구에 따르면, 대운하는 15∼18세기까지 휘주 상인의 성장 과정에 대단히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였다. 즉 휘주 상인의 위상 변화 과정에는 다양한 요인이 존재했지만, 여러 요인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대운하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대운하가 유통로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기 시작했던 19세기, 회․양 지역의 엘리트였던 휘주 상인은 어떤 변화를 맞이했는가? 그들은 황하의 범람으로 시작되어 대규모 전란으로 증폭된 대운하의 위기 및 회․양 지역의 쇠퇴라는 변화에 어떻게 대처해나갔을까?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변은 늘 역사에서 잘 주목받지 못했던 ‘쇠락’의 국면을 복원함으로써 가능하며, 이를 기반으로 명·청 시대 최대 상방으로 군림했던 휘주 상인의 성장과 쇠락을 일관되게 평가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될 것이다.

이에 본 연구는 대운하의 기능 약화와 그 대처 방안을 둘러싼 논쟁을 검토하면서, 휘주 상인이 그 이전까지 향유했던 유리한 조건이 19세기에 접어들어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분석하려고 한다. 아울러 그 과정에서 대운하의 유지와 관련해 국가권력, 관료 집단, 지역사회, 운수노동자, 서구 세력 등 여러 집단의 이해관계가 어떻게 교차하고 분기했는지에 대해서도 관심을 두고자 한다.

본 연구는 19세기 휘주 상인의 쇠퇴 국면에 발생하는 다양한 사회경제적 현상을 파악하기 위한 첫 연구로, 대운하의 기능 저하와의 관련성을 주목하는 것이다. 본 연구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진다면 다음과 같은 몇 가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본 연구는 19세기 휘주 상인의 쇠퇴 국면에 발생하는 다양한 사회경제적 현상을 파악하기 위한 첫 연구로, 대운하의 기능 저하와의 관련성을 주목하는 것이다. 본 연구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진다면 다음과 같은 몇 가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첫째, 본 연구를 통해 어느 정도 주춤했던 휘주 상인 연구에 새로운 활력을 제공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기존에 휘주 상인의 쇠락 요인에 대해서는 ① 강운법(綱運法)에서 표법(票法)으로 변화했던 염운법(鹽運法)의 개혁으로 인한 염업 독점권의 상실, ② 휘주 상인의 소모적인 자본 소비 형태, ③ 태평천국 운동의 발발로 인한 양자강 유통로의 파괴 등이 주로 지적되었고, 이에 대해서는 비교적 충분한 연구가 이루어졌다. 이에 덧붙여 본 연구자가 주목하는 바, 대운하의 기능 약화 및 새로운 유통로의 개발이라는 측면이 더해진다면, 휘주 상인의 쇠락 과정이 보다 입체적으로 드러날 뿐 아니라 쇠락 요인과 정합적으로 연결된 성장 요인에 대한 연구도 활기를 띄리라 기대한다.

둘째, 19세기 휘주 상인의 쇠락에 주목하는 본 연구는 당시 새로운 경쟁 집단으로 대두하는 절강(浙江) 상인과의 비교 연구를 촉발할 것으로 예상된다. 15∼18세기까지 휘주 상인의 경쟁 상대는 주로 산서(山西) 상인이었으나, 19세기에 접어들면 해양 무역에 관한 오랜 노하우가 있기에 서구 열강과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던 절강 지역 등 연해 지역 출신 상인과의 경쟁이 불가피해졌다. 19세기 국내외적 경제 여건의 변화에 대한 절강 상인의 전략과 휘주 상인의 대응 방식은 어떻게 대별되는가? 본 연구의 결과는 이러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 필요한 판단 준거를 제공해줄 것이다.

셋째, 본 연구 결과는 19세기 근대적인 유통로의 확산과 맞물려 진행된 다양한 도시 성쇠(盛衰)의 사례를 발굴하고 비교하는데 활용될 수 있다. 대운하의 쇠락과 맞물린 양주·진강(鎭江)의 쇠락은 동시기에 진행된 상해, 영파(寧波), 온주(溫州) 등 연해 도시의 성장과 큰 대조를 이룬다. 그렇다면 서구열강의 침략 노선이나 근대적 교역 체제로의 편입이 반드시 강남의 여러 도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니며, 지리적인 위치나 상업 관행 및 새로운 교역 방식에 대한 대처 능력 등에 따라 도시의 명암이 엇갈렸다고 볼 수 있다. 기존의 연구가 상해, 영파를 비롯하여 19세기에 괄목상대하게 성장하는 ‘신’도시에 집중되어 있었으므로, 양주와 진강과 같은 ‘구’도시, 특별히 대운하 유통망에 종속된 도시군의 사례 연구를 통해 근대 도시 발전에 대한 다양한 담론과 비교 연구가 촉발되리라 기대한다.

넷째, 19세기 서구 열강의 개입과 함께 무너져버린 대운하의 물류 시스템에 초점을 맞춘 본 연구의 방향은, 최근 새롭게 복원되고 있는 중국 대운하에 대한 이해 및 이를 확인하기 위한 현지답사에도 활용될 수 있다. 19세기 대운하를 중심으로 한 국가적 물류 체제가 와해되었던 국면을 고려할 때, 대운하가 21세기까지 남아있을 뿐 아니라 최근 새롭게 부각되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고밖에 외환 상인에 대한 결론 설명할 수 없다. 다만 21세기의 대운하는 물류보다는 관광 자원으로 각광을 받는 것인데, 중국 정부는 현재 대운하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해 대대적인 재정비 작업에 착수했다. 그리고 남북으로 놓여있는 대운하를 동서로 뻗어 있는 만리장성과 연결하여 거대한 T자형 관광코스로 발전시킬 계획까지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강북(江北) 지역의 대운하 구간은 20세기에도 지속적인 준설과 확장을 거쳐 현재 주로 무거운 건설자재를 운송하는 유통로로서의 기능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강남 지방의 대운하를 볼 때나 중국 정부의 계산을 보면 역시 관광 자원으로서의 대운하로 가닥을 잡아가는 추세다. 만리장성이 본래의 기능이나 목적과는 상관없이 관광 상품으로 둔갑했듯, 이제 대운하에게 그러한 변화가 얼마 남지 않은 듯하다. 물론 본 연구는 19세기 역사적 현상에 대한 분석에 국한되어 있으나, 이는 21세기에 새롭게 복원되는 대운하 및 대운하의 여러 기능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장구한 역사를 가진 중국의 대운하 물류 시스템은 19세기에 막을 내렸다. 마침 19세기는 기선(汽船)과 철도(鐵道)와 같은 근대적인 운송수단이 도입되는 시기였으므로 점차 이용률이 감소했던 대운하는 마치 전근대적 운송로의 ‘잔재’라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중 .

장구한 역사를 가진 중국의 대운하 물류 시스템은 19세기에 막을 내렸다. 마침 19세기는 기선(汽船)과 철도(鐵道)와 같은 근대적인 운송수단이 도입되는 시기였으므로 점차 이용률이 감소했던 대운하는 마치 전근대적 운송로의 ‘잔재’라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중국의 대운하 물류 시스템의 흥망성쇠에는 경제 논리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정치 논리가 개입되어 있다. 대운하가 지방에서 거둔 세량(稅糧)을 수도인 북경으로 운송하는 조운(漕運)을 위한 유일한 유통로로서 오랜 기간 기능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국 대운하의 기능과 생명력은 조운 제도를 둘러싼 논쟁과 함께 평가할 때 그 전모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자연히 조운 논쟁에는 정치 논리와 경제 논리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을 뿐 아니라 상고주의(尙古主義)라고 할 만한 전통과 선례에 대한 존중의 논리도 개입되어 있다. 동시에 조운 논쟁에는 조운과 관련된 여러 집단의 이해관계가 착종되어 있는데, 이러한 이해관계가 외부적으로 여과 없이 노출된 시기가 바로 19세기였다. 18세기 말까지 큰 문제없이 유지되던 대운하 물류 시스템의 누적된 문제점이 동시다발적으로 폭발하였을 뿐 아니라 내우외환의 위기까지 겹치면서 19세기 조운 제도에 일대 전환이 발생하였기 때문이다.

19세기 조운 제도의 변화에 대해서는 그동안 선학들의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 왔다. 본 연구는 기존의 연구에서 부각되었던 각종 논쟁들을 정리하면서, 구체적으로 이러한 논쟁이 대운하라는 사회적 인프라와 어떠한 상관관계를 맺고 있는지, 더 나아가 회·양 지역에서 군림했던 휘주 상인에게는 어떤 파급 효과를 미쳤는지 살펴보려고 한다.

조운 논쟁은 구체적으로 조운 제도에 대한 근본적 개혁안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 기보수리론(畿輔水利論)과 해운론(海運論)이라는 두 논쟁점을 집중적으로 분석하고자 한다. 기보수리론이란 북방 지역을 개발함으로써 물자 수급의 자급률을 높이는 방안으로, 4백여 년간 이어져오던 대운하 물류 시스템을 완전히 방기하는 대신 그동안 개간되지 않던 지역을 개간하고 징세 체계를 바꾸자는 대단히 급진적이고 근본적인 방안이었다. 다만 기보수리론과 연결되어 제기된 조부(漕賦)의 절징(折徵)은 의화단의 난으로 서구열강과 체결한 신축조약(辛丑條約) 이후 막대한 배상금을 마련하기 위해 1901년에야 시행되었다[漕糧改折詔]. 하지만 당시는 이미 청조의 패망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으로, 사실상 조운 제도가 폐지되는 국면의 마지막 몸부림이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해운론은 강남 지방의 조량을 대운하가 아니라 바닷길을 통해 북경 인근의 천진까지 운송하자는 주장이다. 기보수리론이 조운에 대한 근본적인 개혁안이라고 한다면, 해운론은 운하를 이용하는 하운론(河運論)과 어느 정도 병행을 모색하고 있는 절충적이면서도 현실적인 방안이라 할 수 있다. 1826년 ‘실험적’으로 실시된 해도(海道) 조운은 그 시작이었고, 1855년부터는 조량 해운의 수단으로 기선이 범선(帆船)과 함께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범선을 이용하던 해운에서 기선을 이용하는 해운으로 변화된 것이다. 이후 적어도 물류 측면에서 해운이 하운보다 경제적이라는 사실이 널리 인식되기 시작했다. 19세기 후반 철도의 보급으로 대운하의 기능은 더욱 약화되었다.

이처럼 대운하를 이용한 국가적 물류가 와해되면서, 휘주 상인의 근거지였던 회·양 지역의 경제는 급속하게 침체되었다. 19세기 전반에 발생했던 두 현상, 즉 회․양 지역 경제의 쇠퇴와 대운하의 단절은 바로 같은 시기부터 시작된 휘주 상인의 쇠락을 해석하는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물자유통의 쇠락으로 인한 지역 경제의 몰락이 곧 그 지역을 근거로 활동하던 상인들의 성쇠를 해석하는 열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부 휘주 상인은 그 와중에 사업을 정리하고 고향으로 돌아갔으나, 상당수는 소주와 항주 및 새롭게 성장하는 상해로 진입하여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였다. 하지만 이미 이러한 지역에는 절강성 출신의 소흥 상인들이 19세기 전반기부터 진출하여 기반을 마련해 놓았으므로, 19세기 후반에 새로운 경쟁력을 확보하기는 대단히 어려웠다. 물론 그 중 일부는 20세기 전반까지 사업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으나, 대부분의 휘주 상인은 대운하의 종말과 함께 상업계에서의 주도권을 잃고 중소 상인으로 전락하고 강남의 여러 도시로 흩어졌다.

  • 한글키워드
  • 철도,기선,구생선,대운하,소흥 상인,조운,남순,회양 지역,기보(畿輔) 수리사업,해금 정책,해운,소주,상해,양주,북경,하공,신사,휘주 상인,자연재해,세관,공익사업
  • 영문키워드
  • natural disaster,steamship,irrigation works of the capital region,sea transportation,gentry,the transport system of the grain tribute,hydraulic management,southern tour,Beijing,Huai-Yang region,Yangzhou,Shanghai,Suzhou,Huizhou merchants,grand canal,Shaoxing merchants,maritime ban policy,railroad,life-saving boats,customs,merchant philanthropy

본 연구는 자연재해 및 행정력의 급속한 약화로 인한 19세기 대운하의 기능 저하와 휘주 상인의 몰락 사이의 상관 관계를 검토한다. 이를 위해 기선과 철도의 등장, 치수 체계를 다시 회복하려는 청조의 다양한 행정적 노력, 서구 세력의 후원에 기인한 상해의 급속한 성 .

본 연구는 자연재해 및 행정력의 급속한 약화로 인한 19세기 대운하의 기능 저하와 휘주 상인의 몰락 사이의 상관 관계를 검토한다. 이를 위해 기선과 철도의 등장, 치수 체계를 다시 회복하려는 청조의 다양한 행정적 노력, 서구 세력의 후원에 기인한 상해의 급속한 성장, 그리고 염업 이외의 대체 산업을 찾으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했던 휘주 상인의 양태도 함께 고려된다.

This research seeks to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process of deterioration of the Grand Canal and the fall of Huizhou merchants during the 19th century. The advent of steamship and railway, several administrative efforts to recover the hydraulic sys .

This research seeks to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process of deterioration of the Grand Canal and the fall of Huizhou merchants during the 19th century. The advent of steamship and railway, several administrative efforts to recover the hydraulic system, the rapid development of Shanghai city sponsored by Western power, and desperate endeavour of Huizhou merchants to find alternative business will be discussed in this research too.

장구한 역사를 가진 중국의 대운하 물류 시스템은 19세기에 막을 내렸다. 마침 19세기는 기선(汽船)과 철도(鐵道)와 같은 근대적인 운송수단이 도입되는 시기였으므로 점차 이용률이 감소했던 대운하는 마치 전근대적 운송로의 ‘잔재’라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중 .

장구한 역사를 가진 중국의 대운하 물류 시스템은 19세기에 막을 내렸다. 마침 19세기는 기선(汽船)과 철도(鐵道)와 같은 근대적인 운송수단이 도입되는 시기였으므로 점차 이용률이 감소했던 대운하는 마치 전근대적 운송로의 ‘잔재’라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중국의 대운하 물류 시스템의 흥망성쇠에는 경제 논리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정치 논리가 개입되어 있다. 대운하가 지방에서 거둔 세량(稅糧)을 수도인 북경으로 운송하는 조운(漕運)을 위한 유일한 유통로로서 오랜 기간 기능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국 대운하의 기능과 생명력은 조운 제도를 둘러싼 논쟁과 함께 평가할 때 그 전모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자연히 조운 논쟁에는 정치 논리와 경제 논리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을 뿐 아니라 상고주의(尙古主義)라고 할 만한 전통과 선례에 대한 존중의 논리도 개입되어 있다. 동시에 조운 논쟁에는 조운과 관련된 여러 집단의 이해관계가 착종되어 있는데, 이러한 이해관계가 외부적으로 여과 없이 노출된 시기가 바로 19세기였다. 18세기 말까지 큰 문제없이 유지되던 대운하 물류 시스템의 누적된 문제점이 동시다발적으로 폭발하였을 뿐 아니라 내우외환의 위기까지 겹치면서 19세기 조운 외환 상인에 대한 결론 제도에 일대 전환이 발생하였기 때문이다.

19세기 조운 제도의 변화에 대해서는 그동안 선학들의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 왔다. 본 연구는 기존의 연구에서 부각되었던 각종 논쟁들을 정리하면서, 구체적으로 이러한 논쟁이 대운하라는 사회적 인프라와 어떠한 상관관계를 맺고 있는지, 더 나아가 회·양 지역에서 군림했던 휘주 상인에게는 어떤 파급 효과를 미쳤는지 살펴보려고 한다.

조운 논쟁은 구체적으로 조운 제도에 대한 근본적 개혁안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 기보수리론(畿輔水利論)과 해운론(海運論)이라는 두 논쟁점을 집중적으로 분석하고자 한다. 기보수리론이란 북방 지역을 개발함으로써 물자 수급의 자급률을 높이는 방안으로, 4백여 년간 이어져오던 대운하 물류 시스템을 완전히 방기하는 대신 그동안 개간되지 않던 지역을 개간하고 징세 체계를 바꾸자는 대단히 급진적이고 근본적인 방안이었다. 다만 기보수리론과 연결되어 제기된 조부(漕賦)의 절징(折徵)은 의화단의 난으로 서구열강과 체결한 신축조약(辛丑條約) 이후 막대한 배상금을 마련하기 위해 1901년에야 시행되었다[漕糧改折詔]. 하지만 당시는 이미 청조의 패망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으로, 사실상 조운 제도가 폐지되는 국면의 마지막 몸부림이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해운론은 강남 지방의 조량을 대운하가 아니라 바닷길을 통해 북경 인근의 천진까지 운송하자는 주장이다. 기보수리론이 조운에 대한 근본적인 개혁안이라고 한다면, 해운론은 운하를 이용하는 하운론(河運論)과 어느 정도 병행을 모색하고 있는 절충적이면서도 현실적인 방안이라 할 수 있다. 1826년 ‘실험적’으로 실시된 해도(海道) 조운은 그 시작이었고, 1855년부터는 조량 해운의 수단으로 기선이 범선(帆船)과 함께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범선을 이용하던 해운에서 기선을 이용하는 해운으로 변화된 것이다. 이후 적어도 물류 측면에서 해운이 하운보다 경제적이라는 사실이 널리 인식되기 시작했다. 19세기 후반 철도의 보급으로 대운하의 기능은 더욱 약화되었다.

이처럼 대운하를 이용한 국가적 물류가 와해되면서, 휘주 상인의 근거지였던 회·양 지역의 경제는 급속하게 침체되었다. 19세기 전반에 발생했던 두 현상, 즉 회․양 지역 경제의 쇠퇴와 대운하의 단절은 바로 같은 시기부터 시작된 휘주 상인의 쇠락을 해석하는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물자유통의 쇠락으로 인한 지역 경제의 몰락이 곧 그 지역을 근거로 활동하던 상인들의 성쇠를 해석하는 열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부 휘주 상인은 그 와중에 사업을 정리하고 고향으로 돌아갔으나, 상당수는 소주와 항주 및 새롭게 성장하는 상해로 진입하여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였다. 하지만 이미 이러한 지역에는 절강성 출신의 소흥 상인들이 19세기 전반기부터 진출하여 기반을 마련해 놓았으므로, 19세기 후반에 새로운 경쟁력을 확보하기는 대단히 어려웠다. 물론 그 중 일부는 20세기 전반까지 사업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으나, 대부분의 휘주 상인은 대운하의 종말과 함께 상업계에서의 주도권을 잃고 중소 상인으로 전락하고 강남의 여러 도시로 흩어졌다.

첫째, 본 연구를 통해 어느 정도 주춤했던 휘주 상인 연구에 새로운 활력을 제공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기존에 휘주 상인의 쇠락 요인에 대해서는 ① 강운법(綱運法)에서 표법(票法)으로 변화했던 염운법(鹽運法)의 개혁으로 인한 염업 독점권의 상실, ② 휘주 상인의 소모적인 .

첫째, 본 연구를 통해 어느 정도 주춤했던 휘주 상인 연구에 새로운 활력을 제공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기존에 휘주 상인의 쇠락 요인에 대해서는 ① 강운법(綱運法)에서 표법(票法)으로 변화했던 염운법(鹽運法)의 개혁으로 인한 염업 독점권의 상실, ② 휘주 상인의 소모적인 자본 소비 형태, ③ 태평천국 운동의 발발로 인한 양자강 유통로의 파괴 등이 주로 지적되었고, 이에 대해서는 비교적 충분한 연구가 이루어졌다. 이에 덧붙여 본 연구자가 주목하는 바, 대운하의 기능 약화 및 새로운 유통로의 개발이라는 측면이 더해진다면, 휘주 상인의 쇠락 과정이 보다 입체적으로 드러날 뿐 아니라 쇠락 요인과 정합적으로 연결된 성장 요인에 대한 연구도 활기를 띄리라 기대한다.
둘째, 19세기 휘주 상인의 쇠락에 주목하는 본 연구는 당시 새로운 경쟁 집단으로 대두하는 절강(浙江) 상인과의 비교 연구를 촉발할 것으로 예상된다. 15∼18세기까지 휘주 상인의 경쟁 상대는 주로 산서(山西) 상인이었으나, 19세기에 접어들면 해양 무역에 관한 오랜 노하우가 있기에 서구 열강과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던 절강 지역 등 연해 지역 출신 상인과의 경쟁이 불가피해졌다. 19세기 국내외적 경제 여건의 변화에 대한 절강 상인의 전략과 휘주 상인의 대응 방식은 어떻게 대별되는가? 본 연구의 결과는 이러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 필요한 판단 준거를 제공해줄 것이다.
셋째, 본 연구 결과는 19세기 근대적인 유통로의 확산과 맞물려 진행된 다양한 도시 성쇠(盛衰)의 사례를 발굴하고 비교하는데 활용될 수 있다. 대운하의 쇠락과 맞물린 양주·진강(鎭江)의 쇠락은 동시기에 진행된 상해, 영파(寧波), 온주(溫州) 등 연해 도시의 성장과 큰 대조를 이룬다. 그렇다면 서구열강의 침략 노선이나 근대적 교역 체제로의 편입이 반드시 강남의 여러 도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니며, 지리적인 위치나 상업 관행 및 새로운 교역 방식에 대한 대처 능력 등에 따라 도시의 명암이 엇갈렸다고 볼 수 있다. 기존의 연구가 상해, 영파를 비롯하여 19세기에 괄목상대하게 성장하는 ‘신’도시에 집중되어 있었으므로, 양주와 진강과 같은 ‘구’도시, 특별히 대운하 유통망에 종속된 도시군의 사례 연구를 통해 근대 도시 발전에 대한 다양한 담론과 비교 연구가 촉발되리라 기대한다.
넷째, 19세기 서구 열강의 개입과 함께 무너져버린 대운하의 물류 시스템에 초점을 맞춘 본 연구의 방향은, 최근 새롭게 복원되고 있는 중국 대운하에 대한 이해 및 이를 확인하기 위한 현지답사에도 활용될 수 있다. 19세기 대운하를 중심으로 한 국가적 물류 체제가 와해되었던 국면을 고려할 때, 대운하가 21세기까지 남아있을 뿐 아니라 최근 새롭게 부각되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고밖에 설명할 수 없다. 다만 21세기의 대운하는 물류보다는 관광 자원으로 각광을 받는 것인데, 중국 정부는 현재 대운하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해 대대적인 재정비 작업에 착수했다. 그리고 남북으로 놓여잇는 대운하를 동서로 뻗어 있는 만리장성과 연결하여 거대한 T자형 관광 코스로 발전시킬 계획까지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록 강북(江北) 지역의 대운하 구간은 20세기에도 지속적인 준설과 확장을 거쳐 현재 주로 무거운 건설자재를 운송하는 유통로로서의 기능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강남 지방의 대운하를 볼 때나 중국 정부의 계산을 보면 역시 관광 자원으로서의 대운하로 가닥을 잡아가는 추세다. 만리장성이 본래의 기능이나 목적과는 상관없이 관광 상품으로 둔갑했듯, 이제 대운하에게 그러한 변화가 얼마 남지 않은 듯하다. 물론 본 연구는 19세기 역사적 현상에 대한 분석에 국한되어 있으나, 이는 21세기에 새롭게 복원되는 대운하 및 대운하의 여러 기능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RFA 스페셜] 북 시장 대혼란… 주민 아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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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FA 스페셜] 북 시장 대혼란… 주민 아우성

북한 양강도 혜산시의 장마당에 마스크를 쓴 이들이 분주하게 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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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북한에서 쌀과 옥수수 등 식량 가격이 폭등하고 위안화∙달러화에 대한 환율이 급락하는 현상이 가속화하고 있습니다. 특히 6월에는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혼란 상황에 시장 활동은 사실상 마비됐고, 당황한 주민들은 아우성인데요.

국가 주도의 자력갱생을 내세운 김정은 정권이 무역과 시장 활동에 깊숙이 개입하면서 상인 등 시장 주체들이 관망세로 외환 상인에 대한 결론 돌아섰고, 시장 활동이 침체되면서 물가 상승과 환율 급락을 불러왔다는 분석입니다.

현 상황이 일시적인 과도기 현상인지, 국가 통제를 넘어선 위기인지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노정민 기자가 보도합니다.

물가 폭등∙환율하락 등 6월의 대혼란

[북한 여성 (6월 초 전화 통화)] 쌀은 (1kg에) 1만 원 정도 한다. 기름은 1kg에 중국 돈으로 250원.

[이시마루 지로 대표] 지금 시장에서 옥수수값은 2배 이상 올랐고, 백미 값도 70~80% 정도 올랐습니다. 한 달 사이에 이렇게 올랐다는 것은 일반 서민들에게 큰 타격이 됐을 테고, 외화 가치도 갑작스럽게 떨어졌습니다. 시장 상황만 놓고 보면 대혼란에 빠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탈북민] (중간 브로커의 말에 따르면) 중국 위안화 사용을 엄격히 단속한다고 하더라고요. 또 북한 내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식량 가격과 환율이) 멋대로 오르내리고. 자기 맘대로예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식량을 비롯해 물가 폭등과 외화 환율 급락에 직면한 북한 시장. 지난 6월 22일 기준으로 북한 시장에서 거래되는 쌀과 옥수수는 각각 1kg에 7천500원과 5천550원이었습니다. 또 중국 1위안은 북한 돈 505원, 미국 1달러는 5천450원에 거래되고 있습니다.

이같은 현상은 6월 들어 눈에 띄게 두드러졌습니다. 6월 초만 해도 4천 원대였던 쌀값이 갑자기 7천 원을 넘어섰고, 옥수수값은 2천 원대에서 5천 원을 훌쩍 넘어선 겁니다. 반면, 북한 원화 당 중국 위안화 환율은 900원에서 500원대로, 달러화 환율은 6천 원대 후반에서 5천 원대 중반까지 계속 떨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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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시장 물가 정보 /아시아프레스 제공

이시마루 지로 일본 ‘아시아프레스’ 오사카 사무소 대표는 최근 북한 시장이 혼란스러움을 넘어 아우성 수준이라고 전했습니다.

[이시마루 지로 대표] 5월 말까지는 쌀과 옥수수값이 조금씩 오르긴 했지만, 인플레이션이라 할 수준은 아니었고, 북한 당국의 물가 통제도 어느 정도 성공했습니다. 그런데 6월 들어 갑작스럽게 식량 가격이 오르고, 동시에 중국 위안화, 미국 달러화 가치가 급락했습니다. 이유가 무언인지도 파악이 잘 안 되고 있습니다. 북한 돈으로 쌀값이 오르는 동시에 외화의 가치가 떨어지는, 지금까지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이전과 180도 다른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혼란 속에서 당황하고 있고, 시장 상황은 아우성이라고 많이 말합니다.

시장이 혼란 상황에 빠지면서 거래도 뚝 끊겼습니다. 오늘과 내일의 물가와 환율이 어떻게 변할지 누구도 예측할 수 없어 파는 사람이나 사는 사람 모두 매매 활동이 위축된 겁니다. 북한 돈과 외화 모두 믿지 못하는 상인들은 갖고 있는 물건을 내놓지 않게 됐고, 이는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을 불러오면서 물가 폭등의 원인이 됐습니다.

이미 북한 전역에는 식량과 현금을 모두 소진한 절량세대가 급증하는 가운데 앞으로 식량 확보가 어려워질 거란 불안 심리가 확산하는 것도 식량 가격의 급등을 부채질하고 있다고 이시마루 대표는 지적했습니다.

[이시마루 지로 대표] 지금 옥수수가 자라지 않고 있다는 말도 들리고, 벌써부터 가을 수확을 망칠 거란 말도 많이 듣습니다. 지금부터 식량 확보가 어려울 것이란 정보가 쌀값 급등에 영향을 미쳤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보릿고개와 올해 농사가 잘 안될 것이란 예측 등이 불안 심리를 가중시키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강력한 외화 사용 단속. 원화 가치 회복 노림수

북한 당국의 외화 단속은 한층 더 강화됐습니다.

당국이 시장과 무역회사 활동에 깊숙이 개입하면서 중국 위안화 등 외화의 흐름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는데, 무역회사에는 보유한 외화를 모두 국가에 신고하고, 외화가 필요할 때도 국가를 통해 교환하라는 지시가 내려왔으며 시장에서는 시장 관리원과 안전원, 가격단속반 등이 매일 외화 사용을 감시하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외화 사용이 적발되면 몰수까지 하고, 환전꾼들은 비사회주의 행위로 간주해 처벌까지 받는 상황입니다.

이렇다 보니 무역일꾼들이나 돈주들은 보유하고 있던 외화를 내놓을 수밖에 없고, 자연스럽게 위안화와 달러화 가치의 하락을 불러왔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입니다.

임을출 한국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이같은 외화 환율의 급락에는 국가적 자력갱생을 내세운 김정은 총비서의 의도가 반영될 것일 수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임을출 교수] 김정은 총비서가 시도하는 것 중 하나로 원화의 가치를 정상화하겠다는 의도가 상당히 강합니다. 원화 가치가 너무 싸구려로 변질돼 있다 보니까 어떻게든 원화 가치를 높여야 하는데, 이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는 것이 국산화 정책입니다. 국산 제품을 시장에 많이 공급해서 국산 제품 중심으로 상품이 거래되기를 의도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관점에서 보면 위안화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이 전략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겁니다. 지금은 북한 주민들이 위안화를 많이 갖고 있지만, 점진적으로 북한 원화를 시장에서 더 많이 사용하도록 유도하는 측면도 있을 수 있는 겁니다.

하지만 임 교수는 위안화 가치를 떨어뜨릴수록 북한 주민들의 어려움이 커질 수밖에 없어 이같은 현상이 계속될 수는 없을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임을출 교수] 특히 북∙중 국경지역은 위안화를 압도적으로 많이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위안화 가치를 계속 떨어뜨리면 주민들의 어려움이 가중될 수밖에 없고, 그런 현상을 북한 당국이 모를 리 없다고 봅니다. 그래서 이런 현상이 계속 갈 수 없다. 저의 잠정적인 결론은 (이런 현상이) 추세적이진 않을 것이고, 계속 위안화 환율을 떨어뜨리지 않을 거라는 것이 제 분석이자 전망입니다.

이시마루 대표 역시 같은 의견입니다.

[이시마루 지로 대표] 한도가 오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봅니다. 사실 북한 경제가 어느 정도 성장을 보였던 것은 시장의 자유와 활발한 무역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잖아요. (여기에는) 바로 중국이 있었고, 이 때문에 외화가 유통됐던 겁니다. 이 상황에서 외화 사용을 금지하거나 유통을 중단해서 일시적으로 외화 가치가 떨어졌지만, 이를 계속 유지할 수는 없는 것이고 무역을 안 한다는 전제로만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봅니다. 이는 주민 생활뿐 아니라 국가 경제 전체에 상당한 악영향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미국의 북한 경제 전문가인 윌리엄 브라운 조지타운대 교수도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북한 원화와 달러화, 위안화는 국가 통제와 함께 시장이 결정하는 임금, 물가 등이 혼합된 체제에서 유통돼 왔다며 최근 나타난 급격한 물가와 환율의 변동은 가뜩이나 어려운 주민들의 삶을 더 힘들게 할 수 있다고 꼬집었습니다.

‘일시적 과도기?’, ‘통제 불능 상황?’. 기로에 놓여

전문가들은 최근 두드러진 외환 상인에 대한 결론 물가 폭등과 환율 급락의 배경으로 북한 당국의 강력한 개입이 작용했다고 진단합니다. 자력갱생을 강조한 김정은 정권이 이전보다 더 무역과 시장에 개입하고, 자체적으로 물자를 수급해 가격 안정을 도모하려 했지만, 의도대로 되지 않는 상황이라는 겁니다.

또 북한 당국이 국가 주도의 시장 질서를 만들면서 환율과 물가에 개입하다 보니 기존의 시장 주체들은 관망할 수밖에 없고, 이는 시장 활동의 침체와 함께 물가와 환율의 불안정을 불러오게 된 겁니다.

[임을출 교수] 북한이 지난 1월 당 대회 이후 국가적인 자력갱생을 외치면서 시장에 대한 국가의 개입이 점점 강화된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시장에 대한 국가의 개입이라는 것이 환율이나 물가를 통제하는 것과 연결되기 때문에 결국, 북한 당국의 개입 없이 이뤄지는 현상이라고 보긴 어렵습니다.

브라운 교수도 북한이 과거에는 외화 확대를 통한 통화 정책의 안정으로 물가 상승을 억제해왔는데, 지금은 북∙중 국경 봉쇄와 외화 사용 금지 등으로 외환 상인에 대한 결론 북한 돈의 가치를 보호했을 수는 있지만, 오히려 물가 상승을 일으키고 소비와 생활 수준을 대폭 떨어뜨리는 역효과를 불러왔다고 지적했습니다. 따라서 오늘날 북한 시장의 혼란이 김정은 정권을 위협하는 요인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정책 변화가 필요할 걸로 브라운 교수는 내다봤습니다.

전문가들은 당국이 시장에 깊숙이 개입한 만큼 이번 물가 폭등과 환율 하락이 일시적인 과도기 현상으로 끝날지, 아니면 통제 능력을 벗어난 상황으로 이어질지는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애초 북한이 의도한 바와 달리 시장의 침체와 혼란으로 북한 주민의 생활에 직격탄을 주는 상황이 계속되는 것은 자력갱생을 내세운 김정은 총비서에게도 적지 않은 부담이 될 전망입니다.

[이시마루 지로 대표] 식량 가격 상승은 외국에서 수입하거나 지원이 대량으로 들어오면 어느 정도 해소될 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외화 사정이라든지 국내 경제 상황을 보면 중국과 무역이 재개되지 않는 한 회복되기 어렵다고 봅니다. 다시 말하면, 김정은 정권이 자력갱생 정책에 계속 집착할수록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임을출 교수] 북한 당국도 예전처럼 시장을 적정 수준에서 통제했으면 정상적으로 가동되는 것인데, 새로운 자력갱생, 국가적인 자력갱생, 계획적인 자력갱생을 말하면서 시장 활동을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고 국가가 주도하는 시장화를 만들겠다고 개입하면서 이런 부작용이 나타나니까 북한 당국도 조금 더 지켜보고, ‘이래서는 안 되겠다’라고 하면 다시 과거로 돌아가던지, 아니면 ‘이렇게 해도 되겠다’라고 판단하면 당장은 변동성이 심하더라도 안정화 추세로 갈 수도 있는 상황이라고 봐야겠죠.

[보험연도대상] 대한생명 유현숙씨‥매일 상인 100여명 재테크 상담…고객 사로잡아

유현숙 매니저(41 · 종로지원단 용산지점)는 2006년과 작년에 이어 올해 세 번째로 보험왕에 올랐다. 그는 지난 한 해 동안 105건의 신규 계약을 유치했다. 3일에 한건꼴이다. 그가 올린 매출(수입보험료)은 60억원.보통 설계사 30여명의 매출액에 해당한다. 작년 보험시장이 전반적으로 하향세였던 점을 감안하면 그의 실적은 더욱 놀랍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유 매니저의 연봉은 10억원을 넘긴 지 오래다.

◆주부에서 시장 상인의 재테크 파트너로

유 매니저는 1989년 학업을 병행하면서 패스트푸드점 아르바이트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한동안 전업주부로 생활하다 재무설계사(FP) 활동을 시작한 것은 1996년.출발은 순탄치 않았다. 영업에 막 눈뜰 시기이던 1998년 외환위기가 닥쳐왔다. 많은 고객이 해약하는 등 영업 자체가 힘든 시기였지만 유 매니저는 매일 새벽 1~2시면 어김 없이 서울 동대문 의류시장으로 출근해 상인들과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그는 매일 100명이 넘는 상인들을 만나 재테크 상담을 해줬다. 그 결과 상인들 사이에서 '재테크 선생님'으로 불리게 됐다. '돈이 생기면 유현숙을 찾아라'는 말도 생길 정도로 고객들에게 인정받았다. 그는 "신뢰를 바탕으로 고객이 원하는 꿈에 근접해야만 보험 계약이 이뤄진다"며 "서두르지 않고 진심으로 고객을 위해 성실히 일해야만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말했다.

◆VVIP 노후 외환 상인에 대한 결론 지킴이로 변신

그러던 유 매니저는 2007년 새로운 시장을 찾아 나섰다. 2006년 보험왕에 올랐다가 2등으로 내려 앉은 게 계기가 됐다. 그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실패를 맛보더라도 새로운 것에 도전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가 찾은 새로운 시장은 고액 자산가. 이들을 파고들며 VVIP 마케팅을 펼쳤다. 중소기업 최고경영자(CEO),대기업 임원,대학 교수,개인 사업가 등을 대상으로 고객층을 확대해 나갔다. 또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토지보상금 수령 고객을 찾아 효과적인 자산 운용을 위한 재테크 상담을 제공했다.

이들이 돈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전문가들이라는 점을 감안해 종합 재무 컨설팅보다는 보험을 활용한 상속 증여 노후자금 마련 등 차별화된 서비스로 공략했다. 매달 적게는 4~5명,많게는 40여명으로 구성된 각종 모임을 통해 VVIP 고객들과 지속적인 만남을 이어갔다. 모임에 머물지 않고 보험 재테크 부동산 등을 주제로 매년 2회 이상의 세미나도 직접 열었다. 골프나 외환 상인에 대한 결론 등산 뮤지컬 등을 소재로 한 문화 모임도 개최해 고객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회사 내 재무컨설팅 전문조직인 FA센터에 상주하고 있는 세무사와 부동산 전문가를 통해 고객에 전문적 지식을 제공하기도 했다.

유 매니저는 고객과의 만남에서 보험 가입에 대한 부담을 주지 않는 것을 철칙으로 삼는다. 이 때문에 대부분 고객들이 한참 지난 뒤에도 그가 설계사라는 사실을 전혀 알아채지 못한다고 한다. 고객과의 만남을 꾸준히 이어가면서 친분을 쌓고 그 과정에서 고객의 상황에 맞는 재무 컨설팅을 제공한다. 실제 그는 한 고객과의 계약을 성사할 때까지 매주 한 번씩,3년 동안 방문하기도 했다.

전문가로서 자기 관리에도 열심이다. 이미 유 매니저는 실적을 인정받아 생명보험 판매 분야의 명예의 전당이라 불리는 MDRT(Million Dollar Round Table)에서 최고 자격(TOT)을 보유하고 있다. 최고의 자리에 올랐지만 자기계발 또한 쉬지 않는다. 월급날에는 바로 서점으로 달려간다. 경제 관련 서적과 베스트셀러 등 매달 10~20권의 책을 구입한다. 투자나 부동산 관련 세미나가 있으면 빠지지 않고 참석한다. 일주일에 두 번은 사내 후배들을 위한 강의도 진행한다.

회사도 그를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언제든지 고객과 상담할 수 있도록 별도 사무실을 마련해줬다.

◆새로운 보험 문화 만드는 게 꿈

유 매니저의 꿈은 '새로운 보험 문화'를 만드는 것이다. 그는 "처음 보험 영업을 시작한 15년 전에 비해선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보험과 보험 세일즈가 좀 더 제대로 된 평가를 받아야 한다"며 "특히 젊고 유능한 FP들이 더욱 많아져야 한다"고 말한다. 현재 그가 관리하는 고객은 1000명을 넘는다.

earticle

This paper is written to approach the management thoughts of Gaesung merchants reflected in Songdo bookkeeping. Namely, this study was tried to examine structural characteristics of Songdo double-entry bookkeeping that was derived from the basis of business thoughts of Gaesung merchants and to demonstrate it's theoretical structure. We can approve that Gaesung merchants have unique factor and characteristics of their business thoughts and find out ethical basis about clarity and trust of Gaesung merchants through development about method of reasonable double-entry recording system. And this study has used the approaching methods by historical literatures. So that, it has become to revaluate the feature and nature of the Songdo booking system derived from the spirit of Gaesung merchants. It has become to find the business spirits of Gaesung merchants, as follows: ① the diligence, sincerity and economy, ① trust and reliance, ③ the harmony among men and cooperation, ④ rationalism, ⑤ non-borrowing and consistent business, ⑥ frontier spirit, and ⑦ the royalty and patriotism. So that, Songdo Sagae Chibubeop, Gaesung bookkeeping system was based on Gaesung merchant's management thoughts, and changed into the modern entrepreneurship by their descendents. Korean bookkeeping system was journalized as four factors, Sagae-Chibu booking system. It was composed on ① the one who given, ② the one who received, ③ the thing 외환 상인에 대한 결론 given, and ④ the thing received by personification of all the business transactions. Also, it has become to formed the concepts of exchange(transaction) based on the Yang(positive) and Eum(negative) thoughts of Eastern philosophy. As above, Songdo bookkeeping system of Korean ancient style should be recorded as significant invention by the wisdom of the Gaesung merchants in Koryo and Chosun 외환 상인에 대한 결론 dynasty.

우리나라의 상업문화는 삼국시대 이후 봉건주의 체제가 확립되면서부터 이루어졌다고 하지만, 상인들이 체계적인 상거래를 행하게 된 것은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에 걸쳐 상인으로서의 자질을 갖춘 상업 활동이 전개되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고려시대에 송도(개성)를 중심으로 하여 발흥된 상인조직은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도 굳건한 상인정신이 계승되어 한국형 상인으로서의 면모를 갖춘 상도의가 확립되고, 표본적인 개성상인정신이 구축되었던 것이다. 고려시대부터 형성된 개성상인(송상)은 독특한 송방시스템과 차인제도, 그리고 송도치부법이라고 일컬어지는 개성부기제도를 창안하여 합리적인 경영을 행함으로써, 현대까지 그 정신이 전해져 오고 있음을 보게 된다. 동양적인 음양사상에 근거하여 형성되었다는 영통(永通), 통상(通商), 광덕(光德), 홍선(弘善), 존신(尊信), 행손(行遜), 효의(孝義), 자양(資養)의 8개 덕목은 현대의 기업가 정신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개성상인정신이 그들이 창안하여 사용해온 개성부기의 시스템 속에 반영되어 진실하고 투명한 상거래의 기록과 계산을 행함과 동시에 그 내용을 보고하도록 하는 제도로서 계속하여 전승되어 왔으나, 산업근대화의 물결 속에서 서양부기제도의 전래로 인해 쇄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러나 이탈리아의 복식부기시스템과 견주어 조금도 손색이 없는 과학적인 회계제도였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국문 요약
I. 서론
II. 개성상인정신의 경영사상적 기반
2.1 개성의 상업도시화 배경
2.2 개성상인의 형성과 상업 활동
2.3 개성상인정신의 경영사상적 기반
III. 송도치부법에 투영된 개성상인의 경영사상
3.1 송도치부법(松都治運法)의 개념적 틀
3.2 송도치부법에 투영된 개성상인정신
IV. 개성상인정신의 상업문화적 특성
V. 맺는 말
참고문헌
Abstract

대법원 2003. 4. 8. 선고 2001다38593 판결 [손해배상(기)] [공2003.5.15.(178),1075]

[1] 법원이 진정성립이 인정되는 처분문서를 해석함에 있어서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처분문서에 기재되어 있는 문언에 따라 당사자의 의사표시가 있었던 것으로 해석하여야 하는 것이나, 그 처분문서의 기재 내용과 다른 특별한 명시적, 묵시적 약정이 있는 사실이 인정될 경우에 그 기재 내용의 일부를 달리 인정하거나 작성자의 법률행위를 해석함에 있어서 경험칙과 논리법칙에 어긋나지 아니하는 범위 내에서 자유로운 심증으로 판단할 수 있다.

[2] 증권투자신탁계약에 따른 신탁재산의 대외적 소유명의자는 수탁회사이고 위탁회사는 내부적인 의사결정자일 뿐 그에 따른 대외적 법률행위는 수탁회사를 통하여 하여야 하므로, 위탁회사 자신이 신탁재산에 관한 법률행위의 주체가 되거나 이행책임을 부담할 수 없다.

주식회사 조흥은행 (소송대리인 법무법인 광장 담당변호사 유경희 외 1인)

현투증권 주식회사 (구 상호 : 현대투자신탁증권 주식회사) 외 1인 (소송대리인 변호사 이재후 외 5인)

상고를 모두 기각한다. 상고비용은 피고들이 부담한다.

1. 원심은 그 거시 증거들을 종합하여, 피고 현투증권 주식회사(구 상호 국민투자신탁 주식회사에서 현대투자신탁증권 주식회사로 바뀌었다가 다시 상호변경되었다, 이하 '피고 현투증권'이라 한다)와 원고는 1996. 11. 주로 러시아 국공채관련 해외금융상품에 투자·운용할 목적으로 판시와 같은 각 외환 상인에 대한 결론 증권투자신탁계약(피고 현투증권이 위탁회사, 원고가 수탁회사이다.)을 체결한 사실, 한편 피고 현투증권은 위 투자에 의한 투자원리금이 상환될 시점에서 미 달러화가 평가절하되는 등으로 인한 위험을 피하기 위하여, 원고 은행과 사이에 모두 5건의 선물환(先物換)계약을 체결하였는데, 각 선물환거래에 포괄적으로 적용될 선물환거래약정서의 은행란에 원고, 거래처란에 피고 현투증권이 각 표시되어 있었으며, 위 5건의 선물환계약 중 하나인 이 사건 선물환계약(계약체결일 : 1996. 11. 25. 결제일 : 1998. 11. 13. 약정내용 : 2년 후인 결제일에 피고 현투증권이 원고에게 미화 2,300만 $를을 매도하고 그 대가로 한화 202억 1,700만 원을 지급받기로 함.)을 위한 거래성립확인서의 미화 매입자란에는 원고 은행 국제금융부, 미화 매도자란에는 피고 현투증권 및 원고 은행 증권투자부가 각 표시되어 있었던 사실, 한편 원고는 위의 선물환거래로 말미암아 부담하게 될 위험(이른바, 환리스크)을 피하기 위하여 위 선물환계약 직후 미국 외환 상인에 대한 결론 체이스맨하탄은행과 사이에, 별도의 선물환거래약정(이른바, 커버계약인바, 계약체결일과 결제일은 이 사건 선물환계약과 동일하고 내용은 2년 후인 1998. 11. 13.에 원고가 위 미국 은행에 미화 2,300만 $를 매도하고 그 대가로 한화 202억 5,150만 원을 지급받기로 한 것이어서 위 두 계약이 그대로 이행될 경우 원고는 약 3,450만 원의 차익을 얻도록 되어 있었다.)을 체결해 둔 사실, 그 후 원고, 피고 현투증권, 피고 현대투자신탁운용 주식회사(이하 '피고 투신운용'이라 한다)는 1998. 2. 28. 피고 현투증권과 원고 사이의 위 증권투자신탁계약에 기한 위탁회사를, 피고 현투증권에서 피고 투신운용으로 변경하기로 하는 계약을 맺은 사실, 그 뒤 러시아국이 1998. 8. 17. 채무지급유예(모라토리엄)를 선언하여 피고 투신운용이 이 사건 선물환계약을 이행하기 어렵게 되자, 원고에 대하여 위 계약상의 의무이행을 거절한다는 의사표시를 한 사실, 이로 인하여 원고는 위 선물환계약에 따른 미화를 피고 투신운용으로부터 지급받지 못한 채 미국 체이스맨하탄은행에 대하여는 위 반대의 선물환거래약정(커버계약)에 의한 미화지급의무를 이행하여야 하게 됨으로써 손해를 입은 사실(위 선물환계약과 커버계약에서의 예정환율은 각각 1$당 879원과 880.5원 정도였는데 원고가 커버계약을 이행한 때의 환율은 1$당 1,316원 남짓으로 급등함으로써 거액의 환차손이 생겼다.)을 각 인정한 다음, 이 사건 선물환계약이 피고측의 책임 있는 사유로 해제되었음을 이유로 그 손해배상을 구하는 원고의 청구가 정당하다고 판단하는 한편, 그와 같은 이행의무가 존재하지 않거나 존재하더라도 감액되어야 한다는 취지의 피고측의 항쟁을 모두 배척하고, 원고가 청구하는 바에 따라 원고가 위 선물환계약에 의하여 피고측으로부터 지급받았어야 할 미화금액의, 결제약정일 당시의 환율에 의한 금액의 지급을 명하였다.

2. 법원이 진정성립이 인정되는 처분문서를 해석함에 있어서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처분문서에 기재되어 있는 문언에 따라 당사자의 의사표시가 있었던 것으로 해석하여야 하는 것이나, 그 처분문서의 기재 내용과 다른 특별한 명시적, 묵시적 약정이 있는 사실이 인정될 경우에 그 기재 내용의 일부를 달리 인정하거나 작성자의 법률행위를 해석함에 있어서 경험칙과 논리법칙에 어긋나지 아니하는 범위 내에서 자유로운 심증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것 ( 대법원 1997. 11. 28. 선고 97다11133 판결, 대법원 1999. 2. 12. 선고 98다45744 판결 등 참조)이므로, 법원이 처분문서의 기재 내용과 다른 사실인정을 하였다고 하더라도 그 사유만으로는 당연히 위법이 있다고 할 수 없는 것인데, 기록에 의하면 원심이 그 설시와 같은 사유를 들어 이 사건 처분문서인 선물환거래약정서 및 각 거래성립확인서(갑 제1호증의 1 및 2)에 원고도 공동의 미화 매도인인 것처럼 기재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피고들만이 이 사건 선물환계약의 미화 매도인의 지위에 있다고 본 것은 수긍이 되므로, 거기에 상고이유 제1점의 지적과 같은 잘못이 있다고 할 수 없다.

3. 증권투자신탁계약에 따른 신탁재산의 대외적 소유명의자는 수탁회사이고 위탁회사는 내부적인 의사결정자일 뿐 그에 따른 대외적 법률행위는 수탁회사를 통하여 하여야 하므로, 위탁회사 자신이 신탁재산에 관한 법률행위의 주체가 되거나 이행책임을 부담할 수 없는 것인바 ( 대법원 2002. 11. 22. 선고 2001다49241 판결), 이 사건의 원심판결이 위와 같은 증권투자신탁의 법리에 배치되는 명시적인 판단을 하였거나 그와 같은 잘못된 전제하에 판단을 하였다고 볼 수 없으므로, 거기에 상고이유 제2점이 지적하는 바와 같은 증권투자신탁의 당사자에 관한 법리오해나 판례위반이 있다고 할 수 없다.

한편, 원심이 적법하게 인정한 사실관계에 따르면, 피고들과 원고 은행 사이의 이 사건 선물환계약은 피고들의 명의로 신탁재산의 보전을 위하여 체결된 것일 뿐이어서 그 결과를 사후에 신탁재산에 편입하는 때에 비로소 신탁재산의 손익에 반영될 뿐이지 그 계약내용 자체가 당연히 신탁재산에 관한 것이라고는 할 수 없고, 나아가 원고가 신탁재산의 수탁회사의 지위를 겸하고 있었다는 사정 및 외환 상인에 대한 결론 외환 상인에 대한 결론 피고측이 주장하는 이 사건 약관내용이나 증권투자신탁의 법리만으로는 피고들의 명의로 이루어진 이 사건 선물환계약이 자동적으로 신탁재산에 관한 계약이 되거나 또는 원고에 대한 피고들의 책임이 신탁재산에 의하여서만 담보되는 것으로 볼 수 없으므로, 결국 원심 판단에는 상고이유 제3점이 지적하는 바와 같은 증권투자신탁재산에 관한 각 법리오해의 위법도 없다.

4. 원심이 들고 있는 증거들 및 기록을 살펴보면, 이 사건 선물환계약을 조건부계약이라 볼 수 없다고 한 원심 판단이 수긍되므로, 그와 반하여 위 계약이 조건부계약임을 전제로 하는 상고이유 제4점의 주장은 이유 없다.

5. 선물환계약이란 장래의 일정기일 또는 기간 내에 일정금액, 일정종류의 외환을 일정환율로써 교부할 것을 약정하는 계약으로서 그에 기한 채권은 금전채권이므로 그 당사자들은 피고들이 주장하는 바와 같은 러시아국의 지급유예(모라토리엄)가 있었다 하더라도, 이 사건 선물환계약에 기한 피고들의 원고에 대한 채무가 위 지급유예에 의하여 이행불능이 되었다고 할 수 없다.

6. 원심이 들고 있는 증거들에 기록을 종합하여 보면, 위 증권투자신탁 위탁자변경계약에 의하여 피고 현투증권의 원고에 대한 채무가 피고 투신운용에도 중첩적으로 인수되었다고 본 원심 판단은 수긍이 된다. 피고들이 들고 있는 대법원판례들은 이 사건과 사안을 달리 하는 것들이므로, 원심판결이 이와 같은 대법원판례들에 위반하였거나 채무인수 및 그 승인의 효과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였다고 할 수 없다. 상고이유 제6점의 주장은 이유 없다.

7. 상인인 원·피고들 사이에 이루어진 이 사건 선물환계약은 그 약정 결제일에 즈음하여 생길 수 있는 환율변동의 위험(이른바, 환리스크)을 회피하기 위하여 체결되는 것으로서 그 성질상 그 약정 결제일에 이행되지 않으면 계약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8. 피고들이 들고 있는 사유만으로는 이 사건 선물환계약의 체결 및 이행과정에서 원고에게 어떠한 과실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고, 아울러 원고의 이 사건 청구가 신의칙에 반한다거나 권리남용에 해당된다고 할 수 없다.

또 원고의 이 사건 청구에 의하여 그 배상을 구하는 손해는 피고측의 채무불이행에서 비롯된 것일 뿐, 원고가 커버계약을 함으로 인하여 비로소 발생된 것이라고 할 수 없으므로, 원고가 커버계약을 체결한 것이 잘못이라 할 수도 없다.

이 점을 다투는 상고이유 제8점 및 제10점의 주장은 모두 이유 없다.

9. 소송촉진등에관한특례법 제3조 제2항에서 '채무자가 그 이행의무의 존부나 범위에 관하여 항쟁함이 상당하다고 인정되는 때'라고 하는 것은 그 이행의무의 존부나 범위에 관하여 항쟁하는 채무자의 주장이 상당한 근거가 있는 것으로 인정되는 때를 가리키는 것이므로, 채무자가 위와 같이 항쟁함이 상당한 것인지의 여부는 당해 사건에 관한 법원의 사실인정과 그 평가에 관한 문제라고 할 것인바 ( 대법원 2002. 6. 11. 선고 2002다2539 판결 등 참조), 기록을 살펴보아도 원심의 이 점에 대한 판단에서 상고이유 제10점이 지적하는 바와 같은 지연손해율 적용에 관한 법리오해의 잘못을 찾아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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