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인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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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생발전 협약식 /사진 출처 = 양기대 의원실

살면서 낯설고 회한이 밀려올 때가 변화되지 않는 내면과 마주 할 때이다 . 인생의 연륜이 묻어나는 숙성된 향기보다 초보를 버리지 못한 모습을 볼 때이다 . 경주를 하면 할수록 더 많은 책임을 감당하고 그것을 기뻐해야 하는데 그 반대일 때 더욱 그렇다 .

쉽고 편한 가벼운 길을 좋아하며 , 안일하게 살고 싶은 어린 모습은 당황스럽게 한다 . 이해관계에 따라 적당히 타협하며 대우받고 인정받는 것에 예민하다가 , 살며시 관심 있는 모습을 볼 때 놀란다 . 심는 대로 거두는 하늘의 추수법칙을 믿으면서 , 속성이나 꼼수로 해결하고 싶은 게으른 착각도 여전하다 . 힘들고 어려운 짐을 벗고 가벼운 것으로 바꾸면서도 사명을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이 말을 걸어온다 .

신앙생활의 나이테가 쌓여갈수록 십자가를 지고 십자가의 길로 푯대를 향해 달려간다는 고백이 자연스런 현상일 것이다 . 편리하도록 줄이고 바꾸어 쉽게 걷기보다 , 정해진 것을 메고 정해진 거리만큼 가는 것이 몸에 익숙할 때도 된 것 같은데 아쉽다 . 사명의 십자가를 지고 왔으면 적응되고 익숙해져서 세상이 오히려 낯설어야 하는데 말이다 .

사명의 무게만큼 지고가야 하는 것이 십자가이고 , 그 거리만큼 걸어가야 하는 길이 십자가의 길이다 . 개인감정과 사정에 따라 무게를 줄이고 , 거리를 형편에 따라 축소하면 다른 길이 된다 . 자꾸 가벼운 짐을 메고 가까운 상인의 길 길로 가고 싶은 유혹의 파도가 반복된다 .

십자가를 지고 가는 길이 멀다고 거리를 줄이면 길이 달라진다 . 예수님이 빌라도에게 재판을 받던 곳에서 골고다까지 메고 간 무게가 십자가이고 , 그 거리만큼 걸었던 길이 십자가의 길이다 . 가볍게 만들고 줄이고 바꾸면 막대기가 되고 , 다른 길로 가면 아랍 상인의 후미진 뒷골목에 이를 뿐이다 .

가벼운 것으로 하나 골라잡아 자기 편한 데로 지고 가는 퍼포먼스가 아니다 . 사랑의 절정으로 , 사랑하기에 무겁고 힘든 짐을 기쁨으로 지는 역설의 극치이다 . 그 무게에 맞는 십자가와 그 거리에 맞는 길을 걸어가는 것이 십자가의 길이다 . 예수님을 매어 단 틀이며 , 우리를 매달 수 있는 크기와 무게로 만든 것이다 . 매달 수 있는 것보다 더 크게 만들지도 않았고 , 매달 수 없게 더 작게 만들지도 않았다 . 가장 적절하게 만들어서 지운 영광의 틀이다 .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고 걸었던 길이 비아 돌로로사 (Via Dolorosa) 이다 . 라틴어로 ‘ 비탄의 길 ’ ‘ 슬픔의 길 ’ 이란 뜻이다 . 비아 돌로로사는 로마총독 빌라도의 집무실에서 골고다 언덕까지 연결된 대략 1.5 ㎞ 정도의 길이다 . 비아 돌로로사는 채찍교회가 있는 곳에서 시작되어 무덤교회에서 끝난다 .

채찍교회는 빌라도의 집무실이 있던 곳에 세워졌다 . 예수님은 이 곳에서 채찍을 맞고 십자가를 진 뒤 골고다로 걸어갔다 .

비아 돌로로사는 모두 14 개의 스테이션으로 구분된다 . 빌라도 법정 , 선고교회 , 채찍교회 , 첫 번째 넘어진 곳 , 마리아를 만난 곳 , 구레네 시몬이 십자가를 지고 간 곳 , 베로니카를 만난 곳 , 두 번째 넘어진 곳 , 예루살렘 여인들을 위로한 곳 , 세 번째 넘어진 곳 ,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해 옷이 벗긴 곳 , 형틀에 못 박힌 곳 , 운명하신 곳 , 아리마대 요셉이 시체를 내린 곳 , 예수님 무덤 등이다 .

비아 돌로로사는 현재 너비가 2m 정도 폭의 길을 따라 좁은 아랍상인들의 가게가 줄지어 있다 . 십자가의 길은 비아 돌로로사 (Via Dolorosa) 의 거리만큼 걸어가야 한다 . 다른 길은 골고다에 이르지 못하고 이른다 해도 더 이상 십자가의 길이 아니다 .

거리를 조정하면 십자가의 길이라고 말하여도 자신의 길이 된다 . 십자가의 무게와 거리는 정해져 있는데 힘들다보니 잔꾀가 생겨 바꾸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 십자가를 지는 형식만 취하고 가벼운 것으로 바꾸어지고 가는 것에 의미를 두게 된다 .

거리도 골고다까지만 가면 되는 것이기에 , 그 거리를 힘들게 걷기보다 다양한 핑계로 축소시키려 한다 . 그래서 무게와 거리를 줄이면서 더 좋은 효과를 내는 방법을 찾게 된다 .

새로운 소식과 정보는 짐을 줄이고 그 거리를 바꾸면서도 성공했다는 노하우이다 . 하지만 그것은 새로운 소식이나 지혜가 아님을 우리 속사람이 본능적으로 안다 . 하지만 피하고 싶으니 솔깃하여 치우치고 잠시 귀 기울어 본 것일 것이다 .

사람의 욕심은 바꿀 수 없는 것도 바꾸고 ,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여 사면조치로 마음을 편하게 한다 . 우리가 져야할 무게의 십자가가 무거워 보여도 몸에 맞는 무게이다 .

가까운 지름길로 가려고 기웃거리며 거리를 계산하여 가면 오히려 길이 더 멀어진다 . 무게는 지고 간만큼 가벼운 것이며 , 거리는 걸어간 만큼 가까워진다 . 반드시 그 무게와 그 거리를 채워야 하고 , 그 과정이 바로 십자가의 길이다 .

십자가의 길은 그 거리만큼 걸어가는 과정자체이다 . 새로운 소식과 길은 없다 . 빌라도 집무실에서 골고다 언덕까지 모든 고난의 과정을 거칠 때 골고다에 오르게 된다 .

십자가에서 매달리며 고통의 과정을 다 마친 후에 부활과 영광의 면류관을 쓰게 된다 . 그 상인의 길 고통의 무게와 거리의 과정을 눈물로 다 채워야하는 잔이다 . 그 잔을 쉽게 바꾸고 싶은 소욕이 십자가를 막대기로 바꾸는 우상을 만든다 . 편하고 쉽게 가고자 하는 치우침이다 .

주변에 지름길을 알려주는 사람이 많고 , 그 길을 알려고 찾아다니는 행렬에 끼고 싶을 때가 많다 . 줄이고 축소시켜 포장해서 주면 소비의 욕망은 더 자극된다 . 십자가의 길의 여정은 그 과정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섭리의 거리이다 . 심리적이고 물리적 거리의 개념을 넘어선 영적 거리의 총합이다 .

고난의 과정을 순종을 통해 새롭게 열어가는 부활의 대로이다 . 개인이 십자가를 지고 걸어갈 길의 거리는 다를 수 있다 . 하지만 그 거리와 무게만큼은 줄이거나 바꿀 수 없다 .

바꾼다면 그것은 당장 쉽고 편할지 몰라도 십자기의 길은 아니다 . 세상에 수많은 길이 있고 얼마든지 바꾸고 고쳐서 편하게 갈수 있는 방법들도 있다 . 하지만 우리는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걸어가셨던 비아 돌로로사 (Via Dolorosa) 를 따라가야 한다 .

그 과정의 거리만큼 뚜벅뚜벅 걸어가야 한다 . 그 거리만큼 갈 때 , 비로소 십자가의 길을 갔다고 고백할 수 있다 . 그 고백이 우리 모두의 최후행동이길 소망한다 .

도(道)를 구한 발해의 상인, 이광현

도(道)를 구한 발해의 상인, 이광현

발해는, 주변 나라들과의 교류에 많은 힘을 쏟았던 나라다.
에 의하면,
발해는 일본도, 신라도, 조공도, 영주도와 같이
주변국으로 통하는 길을 따로 두고 교류했다고 기록 돼 있다.
주변국들과의 교류는 곧 무역으로 이어졌다.
이 시기, 발해 상인의 아들로 태어나 무역에 종사하면서
도교를 수련한 ‘이광현’이 있었다.
바다와 대륙을 넘나들어 ‘해객(海客)’이라 불렸던 이광현.. 그는 누구일까?

이광현은, 엄청난 부를 형성한 발해 상인의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어려서 부모를 잃고,
형제들과 집안일을 돌보던 하인들과 함께 살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광현이 본격적으로 무역업에 뛰어든 것은 그의 나이 스무살 되던 해다.
배를 타고 황해를 건너 중국의 산둥반도와 장쑤성, 저장성 등의 지역을 다니며
무역을 시작했다.

당시 발해인들은 당나라와 신라 그리고 일본을 상대로 활발한 무역활동을 했는데,
무역을 통해 이익만을 추구했던 상인들과 달리,
이광현은 구도의 길을 찾아 나섰다.

이광현이 스물넷이 되던 해,
당나라에서 장사를 마치고 발해로 돌아오는 길에
배 안에서 도인을 한 명 만나게 됐다.
백세가 넘은 도인과 여러 나라를 돌아다닌 이야기를 나누던 이광현은,
‘무엇을 얻기 위해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는가?’를 묻는 도인에게
‘도를 깨우친 사람과, 이치를 깨우쳐 사물에 얽매이지 않는 사람을 찾기 위해
여러 나라를 돌아 다닌다’는 대답을 한다.

이광현이 도교에 빠져 깨달음을 얻고자 한다는 것을 안 도인은
몇 가지 수련 비법을 알려주는데,
이광현은 ‘운도’라는 섬에 들어가 이 방법들을 수련하며 10년을 살았다.

수련을 마치고 크게 달라진 모습으로 돌아온 이광현을 보고
사람들은 해객(海客)이라 불렀다.
하지만 이광현은 자신이 수련한 방법이, 오래 사는 방법이기는 하지만,
신선이 될 수 있는 방법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도교 역사에 뚜렷한 발자국을 남기다.


자신의 수련에 한계를 느낀 이광현은,
중국으로 떠나 이름난 산을 돌아다니며 20여년의 세월을 보낸다.
그러다 한 도인을 만나게 되는데,
도인은 이광현에게, 신선에 대한 이론과 역사를 집대성한
‘갈홍’의 가르침을 전해준다.

갈홍의 라는 책에 따르면,
신선은 도를 얻는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선약’ 이라는 것을 먹어야 하는데,
이 선약을 만드는 과정이 곧 깨우침을 위한 수업이라는 것이다.

이광현은, [금액환단백문결(金液還丹百問訣)]이라는 책을 썼는데
이 책에는, 도인과 자신의 대화를 기록해 두었다.상인의 길

신선이 되는데 필요한 약을 만드는 방법과,
이 약을 만들기 좋은 곳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져 있고
훗날 이 책은, 이라는 책으로 요약 돼 출간된다.
또한 300여년이 지난 후에, 역대 도교의 수련 방법을 모아 출간 된
라는 책이 있는데, 이 책에도 내용이 요약돼 담긴 것으로 보아
이광현의 저서가 도교 역사에 뚜렷한 발자국을 남겼다고 할 수 있겠다.

이광현은, 발해 인물 가운데 최초로 자신의 기록을 스스로 남긴 인물이다.
1990년대 이후, 중국 학계에서 도교 경전을 조사하면서 알려지기 시작한 인물로
아직은, 더 연구되고 주목되어야 할 인물이다.

이광현은 우리나라 도교사에서도 가장 오래된 저서를 남긴 인물이며,
발해 도교사의 빈 부분을 채워주는 인물일 뿐만 아니라,
9세기 발해 상인들의 활발한 해외 무역 활동 역시 이광현을 통해 알 수 있다.

Arrest Warrants to be Sought for tp1 Captain and Crew Member of Oil Tanker

시가현 오미하치만에서의 숙박은, 그린호텔 Yes오미하치만으로.

후시미이나리

후시미이나리 [외국인에게 인기 있는 일본 관광지 2014]에서 1위에 선정된 이나리 신사의 총본산 [후시미이나리타이샤].
게이한 전철[후시미이나리역]에서부터 이미 참배로입니다. 곧바로 전진하면 혼덴, 오쿠미야, 그 끝에는 길이 약 4킬로나 되는 선명한 자줏빛의 길, [센본도리이(붉은 기둥)]. 도중의 휴식 공간에서의 감주로 교토의 정서를 만끽할 수 있습니다.

금각사(긴카쿠지)

금각사(긴카쿠지) 경내에는 지천회유식 정원(국가 사적/특별 명승), 아시카가 요시미쓰가 차를 끓일 때 사용했다고 전해지는 긴가센(銀河泉), 스키야즈쿠리(数寄屋造り)의 다실 셋카테이(夕佳亭) 등이 있다. 교코치(鏡湖池)에서 바라보는 금각(金閣)은 절경이며, 시간・계절에 따라 각각 정취가 다른 풍경을 즐길 수 있습니다.

오미하치만역 주변 관광 안내

오미 상인의 거리(중요 전통적 건조물군 보존지구) 자동차로 약 5분
도요토미 히데쓰구에 의해 만들어진 조카마치(성 아래 도시)인 [오미하치만]은 이후 오미 상인의 발상지로서 번창하였습니다. 하치만보리 북쪽 산기슭에 무가지(武家地, 무사집의 토지), 수로의 남쪽에 장인・상인 마을인 정인지(町人地, 마을 사람들의 토지)가 배치되고, 가지야초(鍛冶屋町), 뎃포초(鉄砲町), 다이쿠초(大工町), 다다미야초(畳屋町), 우오야마치(魚屋町) 등의 마을 이름이 성 아래 마을의 잔영을 현재에 전하고 있습니다. 바둑판 선 형상으로 구획된 거리에 지금도 남아 있는 상가와 흰 벽의 창고 거리는, 멜대 하나로 시작한 행상에서 제물을 모아 전국적으로 활약한 오미 상인의 지난 날의 융성함을 회상하게 합니다.

하치만보리 자동차로 약 5분
도요토미 히데쓰구가 하치만야마의 산 기슭에 조카마치(성 아래 마을)을 열었을 때, 비와호를 왕래하는 화물선을 모두 하치만에 기항하도록 하기 위하여 하치만보리를 설치하였습니다. 예전에는 돛을 세운 상선이 왕래하며, 열기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현재에는 벚꽃 가로수와 꽃창포가 아름다운 마을의 대표적인 관광 명소로서 사랑 받고 있습니다. 또한, 사극 촬영 장소로서 숨겨진 명소입니다.

가와라 박물관 자동차로 약 5분
에도 말기부터 활발하게 만들어졌던 하치만 기와를 중심으로 소개한 박물관. 전통 기술과 역사를 소개하거나, 체험 공방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기와의 매력을 곳곳에 살린 건축 자체가 전시물이라고 할 만큼의 존재감이 있습니다. 그 외관은 하치만보리로부터의 풍경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습니다.

스이고메구리(수곽 돌아 보기) 자동차로 약 10분
니시노코 호수의 스이고(수곽) 지대는 [춘색・아즈치하치만의 수곽]으로서 비와호 팔경의 하나로 꼽힙니다. 군생하는 갈대에 의해 생긴 자연 수로를 작은 배를 타고 가는 스이고메구리(수곽 돌아 보기)는 물새 소리 등을 들으면서 자연의 풍경을 여유롭게 즐길 수 있습니다.

위인극장 - 임상옥 - 진정한 상인의 길_#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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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홈페이지 :
임상옥 - 진정한 상인의 길
조선시대 거상, 임상옥의 일화 4부작 중 3화. 뛰어난 지혜를 발휘하여 거상이 될 수 있었던 임상옥의 이야기를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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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인형극으로, 우리 역사에 대해 친근하게 접할 수 있도록 한다.
기존의 방식보다 더 깊이 있게 인물을 알고 접근하도록 한다.
더욱 폭 넓은 시청자의 맞춰 유아와 어린이뿐만 아니라
초등학교 저학년까지 쉽고 재미있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사건 중심이 아닌 인물 중심으로 접근하여 상인의 길 재미있게 풀어낸다.

[지역 상생의 길 - KTX광명역세권에서 배운다] ⑩ 중소상인-이케아, 줄다리기 협상 끝에 상생 타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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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7월26일 광명시청에서 1차 중소상인-이케아 상생협력 회의가 열렸다. 이 자리에는 이상봉 상인의 길 가구유통사업협동조합 이사장을 포함한 광명시 중소상인 대표들과 김한진 이케아 코리아 이사 등 이케아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광명시에서는 배동만 재정경제국장과 신세희 기업경제과장이 자리를 함께 했다.

예상대로 이날 회의는 양쪽의 입장 차이를 확인하는 자리였다.

아울러 이케아 입점 저지 대책위원회에서 이케아 부지 매입과 관련하여 또다른 대형마트가 입점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최초로 제기했다. 이에 대해 이케아는 부지를 매입할 때 LH공사에서 분할 매각할 수 없다고 해서 전체 부지를 매입했다며 부지 활용 차원에서 부지 일부에 다른 사업자가 입점할 수 있게 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이케아는 롯데쇼핑과 MOU를 체결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이케아는 부지 일부를 KB자산운용주식회사에 매각했고, KB자산운용주식회사는 이 부지를 롯데쇼핑에 장기 임대하면서 예상하지 않았던 롯데프리미엄아울렛이 입점하게 된다.

1차 상생협력 회의가 끝나고 닷새 뒤, 대책위는 광명전통시장 조합사무실에서 회의를 열고 앞으로 대응방안을 구체적으로 논의했다. 이케아 입점을 돌이킬 수 없다는 판단을 하고, 그러면 어떤 실익을 추구할 수 있을 것인지 의견을 모았다.

우선 1차 상생협력 회의에서 대형마트 입점 의혹이 나온 만큼 이케아 판매시설 내 대형마트 입점 제한을 요청하기로 했다. 또한 상인의 길 상인의 길 상인의 길 이케아에 광명시 가구협동조합에 이케아 매장 내에 2천 평 규모의 공간을 장기 저리로 임대해줄 것과 200평 규모의 국산 가구전시 홍보관을 제공해줄 것을 요구하기로 했다.

2차 상생협력 회의에서 대책위는 이케아 매장 건물 안에 영화관과 대형마트 입점 불가 입장을 강력히 밝히면서 이케아측에서 적극적으로 막아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이케아는 이케아 부지 일부를 제3자에게 매각하고, 제 3자가 롯데쇼핑과 임대계약을 진행할 예정이라며, 임대계약이 완료되면 대책위와 롯데쇼핑의 미팅을 주선하겠다고 약속했다.

대책위는 2,000평 규모의 무상임대 요구도 했다. 이케아는 받아들일 수 없으나, 가구전시 홍보관으로 200평을 무상 제공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케아는 전통시장과 광명 구도심 주차난 해소를 위한 주차 빌딩 건설 요구는 본사와 협의하겠다고 답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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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는 회의 /사진 출처 = 양기대 의원실

양측의 입장 차이만을 확인하는 회의가 이어지는 가운데 광명시의 고심은 깊어만 갔다.

2013년 8월 1일, 광명시는 결국 이케아 건축허가를 승인했다. 광명시 관계자는 고심 끝에 이케아 건축허가를 승인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이케아 건축허가 소식이 전해지자 대책위는 강하게 반발했다. 우선 두 차례 진행된 상생협력 회의는 중단됐다. 대책위는 2013년 8월 5일 기자회견을 열어 광명시가 이케아 건축허가를 전면 취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책위는 이케아 건축허가를 승인한 광명시를 맹렬하게 비난했다.

하지만 광명시는 대책위와의 대화를 이어가면서 이케아와의 상생을 계속 신경썼다. 양기대 당시 광명시장의 말을 들어보자.

“이케아 건물 착공을 앞둔 8월 6일 광명시는 이케아에 대형마트 입점 자제를 요청하는 공문을 발송했습니다. 대형마트 입점이 불가하다는 확고한 입장을 전달한 것입니다.

이는 대책위에서 이케아가 국내의 대형 유통기업인 롯데쇼핑과 MOU를 체결하고 이케아 부지에 대형쇼핑센터를 입점시킬 계획이라는 기사가 언론에 보도되면서 구체화되자 광명시에 대형마트 입점을 막아달라고 요청했기 때문입니다”

이 공문은 ‘이케아 부지 내 대형마트 입점 자제 협력 요청’으로 제목은 비교적 온건하지만 내용에서 대형마트 입점을 반대하는 광명시의 강경한 입장이 확실하게 드러나 있다.

“귀사에서는 전통시장과 중소상인에게 직접적인 피해가 예상되는 대형마트의 입점이 되지 않도록 적극 노력하여 주실 것을 당부드리며, 향후 우리 시의 반대 입장에도 불구하고 대형마트 입점을 추진한다면 우리 시에서는 중소상인단체와 공동으로 입점 저지를 위해 강력하게 대응해 나갈 것임을 알려드리니 귀사의 적극적인 협조를 부탁드립니다.”

- 공문에서 일부 내용 발췌

건축허가를 받은 이케아는 2013년 8월 20일, 본격적으로 공사를 시작했다. 이케아는 착공에 앞서 8월 6일에 기공식을 열어 이케아 한국 입점을 대외적으로 알릴 예정이었다.

하지만 대책위의 격앙된 분위기를 잘 알고 있는 양기대 당시 광명시장은 기공식을 하면 중소상인들의 반발로 물리적인 충돌이 일어날 것을 우려, 이케아에 기공식 취소를 요청했다. 이틀 뒤인 8월 8일, 김한진 이케아 코리아 이사는 광명시의 조언을 받아들여 기공식을 취소하고 기공식 비용을 광명시 사회공헌사업에 기부하기로 했다고 알려왔다.

광명시의 진심이 통했던 것일까. 대책위는 2013년 9월 2일 대책회의를 열고 이케아 입점 저지 활동을 지속하는 한편, 이케아 건축허가 승인 이후 잠정 중단됐던 중소상인-이케아 상생협력 회의에 참석하기로 결정했다.

이 자리에서 대책위는 이케아에 요구할 상생협상 내용을 구체적으로 정리한다. 이케아 부지 내 2천 평을 가구협회에 무상임대, 광명 구도심권에 국내 가구점과 전통시장이 함께 사용할 수 있는 주차장 건립 지원, 이케아 부지 내 영화관 및 대형마트 입점 반대 등이었다.

2013년 12월 19일, 3차 상생협력 회의가 열렸다. 대책위는 이케아가 2,000평 무상임대 요구를 거부하자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규모를 축소해 가구 상설전시관으로 1,000평을 요구했다. 이케아는 200평을 가구유통사업협동조합에 5년 단위로 무상임대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가구유통사업협동조합은 5년 단위 재계약을 통한 임대를 반대하면서 규모를 500평으로 조정하도록 했다. 밀고 당기는 협상을 거쳐 이케아는 가구유통사업협동조합에 350평 규모의 가구홍보전시관을 무상임대하기로 했다. 임대기간은 5년이지만 이후 다시 연장하기로 했다.

이 과정에서 대책위는 대형마트와 영화관 입점은 절대로 안 된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강조하면서 이케아에 이를 수용해줄 것을 요구했다.

대책위와 이케아는 여러 차례 의견 조율을 거친 끝에 2014년 4월 1일에 열린 4차 상생협력 회의에서 의견 차이를 확 좁힐 수 있었다. 그리고 4월 21일에 열린 제5차 상생협력 회의에서 상생협력 방안을 확정했다. 드디어 9개월에 걸친 긴 협상 줄다리기가 마무리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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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생발전 협약식 /사진 출처 = 양기대 의원실

2014년 4월 29일 광명시청 중회의실에서 광명시 중소상인들과 이케아의 상생협약 체결식이 열렸다. 이 자리에는 양기대 당시 광명시장을 비롯한 광명시 공무원들과 패트릭 슈뤼프 이케아 코리아 대표, 이상봉-안경애-김남현-박재철 이케아 입점 저지 대책위원회 공동대표 등이 참석했다.

중소상인과 이케아의 상생협약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이케아 코리아는 광명시 관내 중소유통시장의 안정과 중소상인 지원을 위해 이케아 광명점 일부를 공동전시-판매장으로 제공함으로써 공동의 이익이 창출될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한다.

2. 광명시와 이케아 코리아는 구도심권 활성화를 위하여 대책위원회의 의견을 적극 수렴하고 상생발전 방안을 마련함으로써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지역사업에 적극 협력한다.

3. 이케아 코리아는 직원 채용 시 광명시민을 우선 채용하고 고용안정을 위해 적극 노력하며 지역사회 소외계층이나 사회복지 사업에 대한 봉사활동 등 사회공헌 사업에 적극 참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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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상생발전 협약식 /사진출처 = 광명시 포토뱅크, 아래= 상생발전 협약서 /사진출처=양기대 의원실

양기대 당시 광명시장을 포함한 광명시 공무원들은 누구보다도 중소상인과 이케아의 상생협약 체결을 기뻐했다. 이제 광명시가 중소상인들을 위해 코스트코와 이케아가 상생협약 내용을 충실히 이행하도록 관리감독하는 일만 남았다.

중소상인과 대형유통기업이 윈-윈하는 모델이 탄생하는 상황이어서 양기대 당시 광명시장의 감회도 남달랐다. /양기대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경기 광명시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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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대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경기 광명시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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